리뷰

'YMCA 야구단' 스포츠는 취향일 뿐이다


글: 성재원
2002년 10월 07일

1900년대 초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이 강화되던 대한제국 말기의 애잔했던 회색 빛 풍경이 곧바로 역동적인 축구시합 장면으로 넘어간다. 돼지 오줌보를 드리블하며 상대편 골 문으로 향하는 송강호의 강렬한 눈빛과 민첩한 몸놀림 속으로 애잔함은 소리없이 사라진다. 몇 초 안되는 오프닝씬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6월 대한민국 전역을 휘몰아쳤던 월드컵 4강과 “Be the Reds” 응원 신화를 재생산하면서 그 뜨거웠던 열기를 반복 경험하자고 초청한다. 대신 축구는 오프닝씬으로 돌려세우고 당시 실존하였던 YMCA 야구단의 이야기로 바꾸었다. 종목이 뭐든 스포츠를 통해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된다는 논리는 똑같다. 축구장 대신 영화관이라는 전국적인 공간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국민 통합을 이루면서 스포츠를 통해 하나되는 감동을 아로새기는 한편 영화사는 돈을 벌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은 셈이다. 게다가 적어도 몇 세기 동안은 영원히 국민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식민지 경험을 끌어내어 아시아의 영원한 맞수 일본을 야구장에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니 이래저래 국민적 관심을 끌 역사적, 사회적 근거는 충분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국민통합의 내러티브다. 이 드라마는 어떤 능력 있는 정치가도 쉽사리 해내지 못했을, 오직 시행착오로 점철된 긴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시대적인 갈등을 단 두어 시간 만에 가뿐히 해결해 버린다. 무엇으로? 막강의 스포츠, 베쓰뽈로 말이다. YMCA 야구단의 멤버 구성은 그야말로 당시의 사회적 갈등의 축도이며 전통과 근대가 뒤죽박죽 되어있다.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와 롱 스커트의 신여성 패션, 유생들의 단발, 양반의 상투, 생머리에 멜빵 바지, 흰 한복, 전봉준식 헤어스타일, 하나로 따은 총각머리 등 인물들의 의상과 분장은 대한 제국 말기의 복잡한 군상들을 섬세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4강과 “Be the Reds” 응원 신화가 실제적인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한 신화였듯이 국민통합을 중심으로 한 영화 [YMCA 야구단]의 이야기 흐름은 너무도 산만하다. 스포츠는 전근대적인 전통과 근대적 개인, 신여성과 전통적인 남성, 양반과 상놈간의 갈등에서 심지어는 민족주의 투사와 친일파 후손간의 해결 불가능한 갈등 해소까지 담당하고자 한다. 스포츠 만능 신화? 스포츠, 너는 웃기는 슈퍼맨이기보다 한 놈만 패는 무대포가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송강호의 삶과 캐릭터는 재밌고 설득력이 있다. 전형적인 한복을 차려 입었지만 머리는 시대를 엽기적으로 앞서가는 스포츠형이다. 몸은 전통에 구속된 자아와 근대적 개인주의를 향하는 자아간의 투쟁의 장이다. 입으로는 선비임을 운운하면서도 눈은 야구공과 방망이를 집요하게 좇고있는 몸의 불협화음이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외에도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을 패러디한 연애편지 장면은 절묘하게 죽음과 민족의식과 코메디를 조화시킨 기막힌 아이디어이다. 반면 김혜수나 김주혁의 민족주의 투사 캐릭터는 정치적인 신념을 스포츠 만능 신화에 팔아 넘김으로써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 직전 균형감을 상실하고 만다. 더욱이 그 결정적인 항복 직전에 하는 김혜수가 던진 한마디의 대사는 영화 전개상 필요하였지만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였다고 본다. 이 흐름이 친일파 아들과의 화해로 계속 이어지는데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지만 역시 스포츠라는 만병통치약으로 해결될 갈등치고는 너무도 무겁지 않은가? 그 외에도 양반과 상놈간의 신분 갈등이라든지 권위적인 남성과 신여성간의 갈등 등 감독은 너무나 푸짐한 상을 차려놓았다. 손님은 다이어트를 하는 중인데 말이다. 너무나 많은 갈등과 그것의 논리적인 해결을 충분히 보여주다보니 극의 긴장감이 여실히 떨어지고 만다. 사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일본 군대의 야구팀과 벌이는 2차 대결은 무척 흥미로운 이벤트이다. 2번째 경기는 “9회말 투 아웃부터” 라는 유명한 야구의 경구가 실현되고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82년 세계 아마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펼쳤던 김재박 선수의 역사적이고도 영웅적인 실수를 패러디하고 있다. 이 어찌 아니 흥미로울 수 있겠는가? 다만 여기까지 오면서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국민통합 내러티브의 광대한 물살에 빠져 힘을 너무 소비한 것이 탈이었다.

분명히 짚자. 영화 [YMCA 야구단]이 계승하는 월드컵 4강과 “Be the Reds” 응원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다. 언론 매체들이 하나같이 붉은 칼라로 국민의 하나됨을 지면과 브라운관에 도배할 때 상암동 철거민과 노점상들은 보금자리와 생계비를 찾아 헤맸고,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부당 노동행위와 국민적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체 붉은 머리띠 두르고 농성장에서 생존권을 위한 응원과 대한민국 4강을 위한 응원의 기막힌(?) 칵테일을 마셔야했다. 장애인들 역시 경기장으로부터 구조적인 소외를 당했다. 신화 뒤엔 이런 찬란한 현실이 있다. 지금 현재의 영화판 또한 묘하게도 월드컵이 진행 중이던 상황의 재판이다. 전국 개봉관에서는 송강호, 김혜수 주연의 [YMCA 야구단]이 흥행의 조짐을 보이며 상영에 돌입한 반면 안국동에 있는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는 약 1주일간 <그들만의 월드컵>, <상암동 월드컵>이 소수의 관객들에게 상영되고 있을 뿐이다. 사회적 계급, 계층 간의 갈등과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이라는 구호에 파묻혔듯이 영화 [YMCA 야구단]의 화려한 영상에 독립 다큐멘터리의 소박한 영상들은 지하에서 울리고만 있다.

스포츠는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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