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밀애> 붉은 립스틱과 빨간색 원피스에 대하여


글: 정미래
2002년 11월 13일

아무런 자극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과 다소 위험하지만 격정적이고 스릴 있는 삶. 둘 중에서 어떤 것이 인간에게 더 살아있다는 특별함을 느끼게 해 줄까.

<밀애>의 주인공 미흔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이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30대 가정주부였다. 적어도 빨간 옷을 입은, 남편의 젊은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침범해 오기 전 까지는…. 걱정 없이 먹고 살 만큼의 적당한 생활,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적당한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딸이 있는 미흔에게는 집안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애를 키우는 것,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었다. 아니, 그냥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며 적당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딸과 함께 대형 슈퍼에 가서 저녁 반찬거리를 사고,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오면 온 가족이 집안에 둘러 앉아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여겼던 미흔.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며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여성’이다. 서른 살, 아직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뽐내고 드러낼 만한 나이다. 그런 미흔에게 들이닥친 빨간 옷의 여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미흔의 여성성을 묵살시키고 비웃어 버린다. 단지 남편의 배신만이 그녀에게 충격을 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젊고 당당한 여자 영우에게 어이 없이 당해버린 미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시시함과 원인불명의 지독한 두통을 떠안고 만다. 파괴된 정신으로 이유 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미흔은 남편을 욕할 힘조차 없이 폐허가 되어 있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하찮게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간다. 속죄를 핑계로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그렇게 무의미한 삶을 지속하던 미흔 앞에 나타난 인규. 게임처럼 사랑을 즐기는 자유로운 남자 인규를 통해 미흔은 생에 단 한번 뿐일 짜릿하고 흥분되는 감정을 경험한다. 불륜이라는 스릴 만점의 일탈을…. 남편에게조차 하지 않던 질투를 하게 되고, 마치 어린 애처럼 잠 옷 차림으로 창문을 뛰어 넘어 인규에게 향하는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미흔. 인규를 만난 이후 미흔에게는 발랄함과 치기가 느껴질 정도의 생동감이 일어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진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도발적인 정사를 벌이고, 질투를 하며 사소한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흔도 빨간 옷을 입는다.

붉은색은 강렬하고 섹시하며 당당함이 느껴지는 색이다. 여성에게 있어서의 붉은색은 어떤 의미일까?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겠지만, 빨간 옷을 입은 영우는 ‘진짜 사랑’을 하고 있었으며 그 만큼 미흔 앞에서 당당했던 것이다. 미흔이 드디어 제대로 살아있다고, 특별하다고 느꼈던 순간. <밀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빨간색 원피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미흔이 흥분과 기대에 들떠 인규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런 미흔의 모습은 그녀가 진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생기 있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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