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운스> 변태만 없으면 세상은 좋아진다 글: dreamalive 2002년 11월 30일
영화 속의 세계는 그야 말로 '쓰레기'다. 여학생들은 어디를 가든지 치한과 변태들에게 둘러싸여있다. 멀쩡한 아저씨가 길거리에서 여학생에게 몸을 팔라고 추근대는가 하면, 거리의 광고도 음란하기 짝이 없고, 쉽게 돈을 벌 수가 있다고 여학생들을 부추기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니 짧은 치마에 루즈삭스를 신고 학교에서는 화장이나 고치다가 방과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낙태를 하러 가는 여고생들의 모습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은 저렇단 말인가' '다행이다. 우리 나라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화 속의 세계는 그야말로 더럽고 추악하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환멸스럽기 짝이 없다. 도대체 저런 세상 속에서는 누구나가 지독한 속물이 되지 않는다면 정신분열증에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그렇게 그들은 희망을 갖고, 친구를 얻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고, 세상이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우리는 제대로 살자는 다짐을 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걸까? 이렇게 쉽게 기쁘게 끝나도 되는 걸까? 유쾌하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못내 씁쓸한 아쉬움은 남았다. 감독은 길거리의 '쓰레기'를 청소하듯이 이 사회의 온갖 추악한 것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인 듯했다. 그 주범은 언제나 여학생들을 노리는 '변태 아저씨들'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단순한 논리 하나로 영화는 모든 가치판단을 끝내버린다. '변태 아저씨들'만 없어지면 세상은 좋아진다. 그러니 '똑바로 살아라'고 도덕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다. ![]()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도 없고 성찰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만 호소를 하는 것은 이미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변태 아저씨들'과 '여학생'의 선악구도를 만들어놓고, 우리는 이쪽의 선한 쪽에 서서 '그들'을 악으로 타자화시켜 매도해버린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결국 '우리'이다. 자기 딸만한 여학생에게 돈을 주며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변태 아저씨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그것을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으로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까? 이것은 '인터내셔널가'가 이제는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래 여하튼 밝고 가볍고 경쾌한 것은 좋지만, 그래도 한 쪽 눈을 아주 감아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