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림> 공포영화? 공포??
글: 조윤경
1999년 10월 01일
감독: 웨스 크레이븐
출연: 스킷 울리히, 드류 배리모어
 |
그러나 사실 나는 그다지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과거에는 끔찍하게 싫어했다. 초등학교때 보았던 <전설의 고향>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묻은 칼을 입에 물고 나를 째려보던 처녀귀신은 얼마나 끔찍했던지. 어디 그 뿐인가. 친구들의 꾀임에 마지못해 함께 보았던 <나이트메어>에서는 끔찍한 웃음의 프레디가 한동안 꿈속에서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길을 걸어가다 빨간 줄무니의 셔츠를 입은 사람만 봐도 놀라서 도망가곤 했다. 대학에 들어오고 성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공포영화, 특히 '슬래셔 무비'류의 공포영화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변함이 없었다. 후에는 한동안 거울만 보면 나도 모르게 '캔디맨, 캔디맨...'하고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놀라서 다섯 번을 채우기 전에 얼른 '펩시맨'을 큰 소리로 외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링>은 물론이고, <여고괴담>, <캠퍼스 레전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2>, <뱀파이어> 등을 꽤 재미있게 보게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같은 공포영화인데도 말이다. 다만 이 영화들이 앞서 언급한 공포영화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이들이 모두 90년대에 등장한 공포영화이며, 다른 하나로는 모두 내가 <스크림>이라는 공포영화를 보고 난 후에 보게 된 공포영화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1996년 작 <스크림>은 확실히 기존에 내가 보아왔던 슬래셔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범인인지를 알 수 없게 하는 각본의 치밀함이 있다.
기존의 공포영화들이 단순히 무섭기만 한 B급 영화로 치부당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치밀한 내용 구성이 부족했다는 점인데, 이는 대부분의 미국 공포영화에서 사물들의 인형극 효과를 공포의 주된 요소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즉, 보여짐을 통한 무서움의 실현이라는 직접적인 방식이 공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들 중 상당수는 컬트 무비가 되기도 했으며, 또 자신의 고유한 양식을 지키며 아직까지도 B급 영화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초기의 공포영화들로는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드라큐라, 좀비 등을 소재로, 고딕적인 양식을 바탕으로 하며 독일의 표현주의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를 모태로 해서 자신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한 작품들을 들 수 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들어서면서 보다독립적이고 특별한 영화로 자라잡게 되면서 일련의 작가군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블데드>의 셈 레이미와 <그렘린>의 조 단테, <매드니스>의 존 카펜터, <비디오 드롬>의 데이빗 크로넨버그, <나이트메어>의 웨스 크레이븐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물론 웨스 크레이븐이다. 그는 비록 슬래셔 영화로 공포영화에 입문하긴 했지만 다른 어떠한 공포영화 감독들보다도 뛰어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더 이상 공포영화가 보여주기가 전부가 아니라 스토리가 필요한 영화라는 점을 깨달았으며 그러한 그의 생각을 만족시켜준 유능한 극본가 케빈 윌리암스와의 조우를 통해 바로 <스크림>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스크림>이 주목받을 또다른 이유로는 영화 속에 숨겨진 다른 공포영화들에 대한 단편적 감상들을 들 수 있다. 웨스 크레이븐은 1972년에 데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27년 간 오로지 공포영화만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유머스럽게 배열한 여러 힌트들을 즐기는 것도 영화광들에게는 놓칠 수가 없는 재미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 시드니의 남자친구인 '빌리 루미스'라는 이름에서 '루미스'는 히치콕의 전설적인 영화 <사이코>에서 주인공 자넷 리의 애인이름인 동시에, 존 카펜터의 <할로윈>의 로널드 플레즌스의 극중이름이기도 하며, <할로윈>에서 주인공 제이미 리 커티스의 친한 친구 애니 역을 캍은 배우의 실제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교 청소부 '프레드'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에서 착안한 것이며 실제로 이 역에는 감독인 웨스 크레이븐이 직접 출연했다. 또한 <나이트메어> 이후의 속편을 보면서 출연진들이 나누는 혹평들뿐만 아니라, 공포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제이미 리 커티스에 대한 잔인한 농담들과, 공포영화에 즐겨 출현했던 린다 블레어(엑소시스트에서 목이 무섭게 돌아가던 그 처녀)의 깜짝 카메오 출연 등 자세히 보면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공포 그자체보다는 영화 곳곳에 배치된 퍼즐에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또한 <스크림>에서는 공포영화의 법칙을 언급하며 영화 속에서 그 공식을 무참히 깨뜨려 버려 영화적인 흥미를 더해준다. 첫째, 섹스를 하면 죽는다, 둘째, 술이나 마약을 하면 죽는다, 셋째, '곧 돌아올께'라는 말을 남기고 가면 죽는다, 넷째, 끝까지 살아남는사람은 반드시 처녀다, 그리고 공포영화 속에는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왠 이데올로기 타령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분명 공포영화 속에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은 실제로 영국의 영화학파인 '스크린 학파'에 의해 대중 문화 분석에 그대로 응용되었다.
스크린 학파는 주로 카메라가 영화 관객을 어떻게 위치시키는가를 분석, 영화가 어떻게 관객을 호명하고, 관객은 어떻게 그 부름에 답하는가를 연구했다. 영화속 이데올로기 분석은 어떤 인물의 관점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는가가 관객에게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바라보게 한다는 주체형성의 측면을 중시하며, 영화의 내용물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공포영화에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또다른 영화 <나이트 메어>를 중심으로 공포영화 속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표방하고, 문화적으로는 신보수주의를 지향한 레이건이 집권하고 있던 1984년에 미국에서 제작되어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몰았던 작품이다. 당시 미국은 6,70년대 미국의 진보적 흐름을 주도하던 히피문화, 공동체 문화, 좌익 학생운동 등의 청년 문화들을 유연적 노동의 결과로 인한 소외계층의 증대로 보는 시각이 아닌, 사회 혼란의 주범으로 보는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여론이 주도되고 있던 시기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영화 속에서 프레디에 의해 징벌을 당하는 아이들의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화속에서 살해된 아이들은 80년대 초의 전형적인 미국 청소년들로 마약과 무절제한 섹스, 거짓말 등을 쉽게 하는 존재이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낸시는 가장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카메라가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을 카메라와 동일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데, 결국 도덕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를 어른들의 시각에서 평가하도록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살인마 프레디는 어른들이 정해진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고 그에 도전하거나 반항하는 아이들을 제거하는 억압적인 국가기구(ISA)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며, 살아남은 낸시와 같이 이성적이며 '어른과 같이' 행동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설정은 <스크림>에 이르러서는 다소 붕괴되어 진다. 물론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케이시의 죽음은 역시 어른들이 정해놓은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행동-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이는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형식으로 <나이트메어>에서 보여지는 이데올로기적 매커니즘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가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지지를 얻고 <스크림2>의 성공과 <스크림3>의 제작까지 이루어지게 된 데에는 기존의공포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데올로기적 매커니즘을 벗어나 동일시의 위치를 10대 그 스스로에게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얘기했던 몇 가지 공포영화의 법칙들이 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스크림>을 비롯한 90년대 공포영화에서는 이제 10대들 사이에서의 술과 섹스는 금기의 대상에서 선택사항으로, 죽어야 하는 이유 역시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무차별적이며 무의미한 것으로 파악하며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시대가 변화하면서 과거 기성세대의 눈으로 가치의 척도를 매겨 평가하던 행위들에 대해 신세대의 시각에서 새로운 쳥가가 가능해지면서, 이제 영화는 어떤 사회 계층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그러한 고전적 방식 자체를 거부하는 자유분방함과 현실성 있는 내러티브의 전개를 통해 10대들 사이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비단 <스크림>에서 뿐만이 아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나 <캠퍼스 레전드>에서와 같이 10대가 등장하는 공포영화에서도 <스크림>과 유사한 이데올로기적 매커니즘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90년대의 공포영화들은 관객의 동일시 위치를 기존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10대에 맞추어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자 하며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으려 하고 있으며,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사회를 대신해 징벌을 행하던 전지전능한 살인마 대신 내러티브의 전개상 살의를 가진 현실감있는 존재를 등장시켜 영문도 모른채 공포에 떨어야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유 있는 공포'를 느끼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웨스 크레이븐은 공포영화를 통해 자신이 보여주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앙심 깊은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에게는 입밖에 내거나 의논해선 안 될 일이 너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도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거나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많은 공포영화가 전하는 바는 바로 신세대가 구세대의 그런 모습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언덕이 보고 있다>에서 부모의 시체를 적을 유인하는 미끼로 삼았듯이 말이다."
즉, 그는 공포영화를 통해서 기성 세대의 억압, 이유 없는 폭력과 전쟁, 미신과 광신, 의사소통의 부재, 독재, 대중매체에 대한 중독 등 '현실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며 이러한 그의 생각이 단순히 무서운 시선으로 관객을 노려보며 무기를 휘두르는 살인마에게서 느꼈던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고품격 공포 속으로 관객을 몰아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얘기지만 그동안 내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슬래셔무비'류의 공포영화들에게서 느꼈던 감정들은 공포라기 보다는 잔혹함 내지는 끔찍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레디나 제이슨, 악마의 존재는 손에 닿지도 실제로 만나기도 힘든 영적인 존재에 불과하지 않은가. 다만 그들의 살인행각을 보여줌으로써 느끼게 하는 무서움은 끔찍한 영상의 흐름일 뿐이다. 오히려 내 옆의 친구가 살인자일 수도 있기에 더욱 무서운 현실의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공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더 이상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두렵지 않다. 다만 공포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무한한 소재를 제공하는 이 현실이 더욱 무서울 뿐이다.
공포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