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근대? 악취미? 편지? 혹은 한 인간의 나불거림
글: 여임동
1999년 11월 01일
감독 : 나탈리 빈센조
* CUBE : 입방체, 정육면체, 입방체의 물건(주사위, 벽돌등) ((美曰)) 보수적인 사람.
1) 프롤로그
 |
2) 시험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며,그것을 이겨내는 방법 혹은 벗어나는 방법은 출구를 통해 다른 곳으로 벗어나는 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출구와 이어진 다른 공간들은 부비트랩으로 되어있으며 섣불리 이동한다면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것이 자명할텐데 대체 어떻게 해야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하는 곳. 결국 삶이 영화와 동일시 된다면 바로 이런 하나의 [게임성] 때문이지 않겠는가? 큐브에 갇힌 사람들이 "왜 우리가 이곳에 왔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그것이, 삶속에서 세상과 부대끼며 여러 질문을 해대는 우리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공간이라는 하나의 삶의 장소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신은 세계(공간)를 창조했고, 우리(인간)는 거기에 놓여져 있는 존재다]
자 이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전에 왜 하필 우리가 여기에 있는가? 또 그전에 그럼 대체 이 공간은 무엇인가? 아시다시피, 우린 지금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시간이 단절된 탈역사적인 공간인 이 큐브는 그래서 지금까지에 자신의 과거와는 어떠한 연결성이 없으며 <감독이 말한다. 여기 온 이유는 없어. 오직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는 시험만이 있을 뿐일테니까. 그럼 신도 이 감독처럼 유희를 즐기는 건가? 아! 이 세상의 부조리> 그저 자신의 삶과 죽음 이 근본적이며 본능적인 문제에만 열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리더인 쿠엔틴이 듣기 쉽게 말한다. "제발 딴 것에 신경쓰지 말고 이 현실을 직시해!"
3) 이동.
수학천재인 리븐은 이 공간의 비밀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간다.그리고 그녀가 이 공간을 깨닫는 열쇠 중에 하나는 바로 데카르트 좌표다. 데카르트 좌표? 혹시 데카르트 바로 이것이 이 공간의 비밀을 캘 수 있는, 혹은 이 영화의 의도를 밝혀낼 수 있는 키워드이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그의 이 의심할 바 없는 명제는 근대의 시발점이 됐으며,그 근대는 이성과 공간 그리고 정상인 혹은 천재 중심주의에 역사였던 것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잠깐 각각의 출구에서 나온 6명에 사람들을 근대라는 틀로 살펴보자. 리더 쿠엔틴과 수학천재 리븐 그리고 탈옥의 귀재 렌은 수학적 이성과 자신의 경험을 철저히 믿는 인물임에 반면, 그 반대쪽에 서있는 냉소주의적인 워스, 편집증적인 의사 할로웨이 그리고 자폐증 환자 카잔은 그 근대가 규정한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같아 보인다. <당신은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 아니면 이 범주가 매우 자의적인 비약처럼 보이는가?>
그런데 왜 탈옥수 렌은 가장 먼저 죽고, 자폐증 환자 카잔은 중간에 갑작스럽게 나오는 것일까? <17,576개의 방과 듣기에도 머리아픈 수학 공식들을 창조한 이 자칭 천재적 감독에게 대항하는 방법은 혹시 그 공간을 거꾸로 생각해보는 음모론이 아닐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살펴보아야 할게 있을 것 같다. 리더이며 자신의 경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을 합리적이라고 믿으며, 어떤 질서를 세우려고 하는 가장 근대적 인물 쿠엔틴은 워스와 할로웨이를 자의적으로 냉소적인, 편집증적인 인물로 묘사하며 카잔을 가장 이곳에서 필요없는 존재인 미친놈이라고 규정한다. 철학자 푸코가 그의 저서에서 서구 근대가 어떻게 이성과 광기를 나누었으며 그 광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처벌했는지를 폭로했던 것처럼 리더인 쿠엔틴을 폭로해본다면,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인물은 처음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렌이였으며,나중에는 가장 이성적(수학이라는 가장 이성적 학문)존재인 리븐일 뿐일 것이다. 우연적 공동체는 그렇게 자체내에서 분열하기 시작한다. <쿠엔틴이란 인물. 그렇게 혐오할 필요는 없다. 혹시 나 혹은 당신 아니면 우리가 눈감아주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을테니까>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이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은 냉소주의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인물, 바로 워스다. 이 공간을 창조했으며(처음 큐브에 마치 누가오길 기다렸다는듯이 누워있던 사람은 누군가?) 그 공간의 공포를 가장 많이 느낀다는 점에서 워스 바로 그가 데카르트이며 실패한 근대적 지식인일 것이다. 아마도 좀더 덧붙이자면 그는 감독 빈센조 나탈리의 메타포일지도모른다. 관객을 이 공간으로 불러왔으면서도 정작 관객에게는 그 어떠한 힌트조차 주지않는 것이 꼭 아무 것도 모르는 워스와 닮지 않았는가? 솔직히 당신은 리븐이 하는 말들을 도대체 얼마나 알아들었던가? [이른바 근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현재 그러니까 이 공간의 변화였으며,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이 시간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근대 역사가 미래의 후손을 생각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4) 비밀.
결국 근대적 인간과 근대적 공간이 바로 이 공포의 시작이었으며, <그럼 영화의 공포에 시작은 누구인가?> 이것을 벗어나는 길은 [광기]라는 허울로 규정되어 주변으로 내쫓긴 사람들 (할로웨이, 워스, 카잔은 다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을불러 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과 비정상 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그 차이의 선을 지워내버려야 하는 것일테다. 이제 돌아가서 아까 질문에 답해보자. 첫장면에서 의기양양하게 움직이던 렌은 자신의 경험(탈옥)에 대한 절대적 믿음 (경험론적인)과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주의 (자유방임주의적인)를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근대의 죽음을 상징하며, 중간에 갑자기 튀어들어오는 카잔은 광기라는 이름으로 배제된 반쪽의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곳에 있는 인물들에게 던져진 일종의 시험은 아니었을까? 혹은 우리에게 던져진 감독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던가?
이제 공포는 차라리 그 공간이라기보다는,옆에 있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 세상이 공포스러운 것은, 우리 스스로 고백하듯이 그 증오스러운 인간들 때문이 아니였던가? 가장 근대적인 인물인 쿠엔틴은 동료 인물들을 자신의 틀로 규정하며, 강압된 질서를 세우려고하며, 심지어 시간마저 마음대로 조종하려든다. 근대는 그렇게 서서히 전체주의 그리고 파시즘으로 변해가며, 폭력성과 이기주의가 드러난 그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맞서던 의사 할로웨이마저 죽여버린다.[근대는 이미 자기내적모순을 드러냈다. 승리의 도취한 그의 웃음을 보라!]
5) 제자리.
드디어 리븐은 소수와 데카르트 좌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수의 비밀을 찾아낸다. 큐브의 미로를 공포스럽게 했던 것은 근대적 이성이었지만, 이곳을 헤쳐나가는 원동력 또한 분명 이성이다. 문제는 이성이 아니라 틀로 규정된 이성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리븐은 근대적 인물이면서 근대의 장점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는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몰상식하게 마치 유행(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처럼 근대를 폐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역수는 천문학적인 계산이 필요하며 이는 리븐에게도 불가능한 일. 정작 이것을 해결해내는 진짜 천재는 자폐증 환자이며, 아무 도움 못준다던 카잔이다. <아! 이 세상의 공평정대함? 혹은 이상향?>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들은 큐브의 미로를 헤메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실패한 건가? 워스에 말대로 어차피 우린 죽어야만 하는 하는가? 하지만 매우 아이러닉하게도 혹은 상징적이게도, 그곳에 있던 렌의 시체(근대의 죽음)와 렌이 죽은 큐브의 공간을 보아야만 그들은 이 큐브 미로의 구조를 알게된다. 결과론적이지만 헤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들에 탈출구와 모든 비밀은 바로 처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원래 삶이란게 그러하지 않은가?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이 삶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이 삶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는가. 그 삶 속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라고들 앞서간 선인들이 말하지 않던가> 하지만 탈출구의 비밀을 찾았다고 기뻐하지만 말고 좀더 생각해보자. 실로 허무하지는 않은가?
6) 깨우침?
큐브의 비밀은 그 자체의 움직임에 있었다 .이는 공간의 이동만을 생각하던 인물들 즉 근대적 인물들의 한계이며,그 움직임 즉 주기적 시간의 변화를 깨우쳐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이었다. 자 이제 드디어 탈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깨달음은 그 탈출구에 있지 않고 그 우연한 공동체들 사이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일단 그 허무를 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두자.
냉소주의로 가득차 있던 그 워스가 주체적으로 나서며, 폭력성을 드러내는 쿠엔틴에게 맞서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배척하는 카잔을 할로웨이가 보살펴 주듯이, 우연한 공동체(신이 이 공간에 놓아둔 그 많은 존재들)가 건강한 공동체주의를 지향할 때 비로소 탈출구 혹은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마도 그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하고, 서로 고민하는 그 사이에서 꽃필 것이다. [공동체]는 그래서 획일화로 규정된 존재들의 모임이 아닌, 무(無)차이 (무차이란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너무 많아 파악할 수 없다고 어떤 철학책에서 말하더라) 속에서 서로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해 주는 그곳에서 성립된다. <탈출구를 못찾고 그 시작점 큐브에서 죽은 동료들은 그런 점에서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이 큐브라는 세상에 들어올 다음 이들을 위해 하나의 열쇠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진정한 삶같아 보이진 않았는지? 아니면 탈출구를 찾던지.>
7) 덧붙여.
당신과 나의 공포의 여행도 끝났다. 그런데 혹시 이유없는 황량함이 생기진 않던가? 대체 그 [큐브]라는 영화 속에서, 관객이 한일은 무엇이었던지. 이해할 수 없는 그 해결책에 나열 속에서 그저 허한 웃음만을 짓고 나오던 우리가 너무 애처로워 보인다. 하지만 정작 탈출구를 발견하고서도, 또 다른 틀로 정해진 그 큐브의 세상을 두려워해서 머뭇거리던 워스의 모습을 기억해보자. 당신 또한 이 큐브의 미로보다 영화 밖에 존재하는 세상의 공포가 더 두렵진 않은가? 감독의 그 악취미에 대해서는 이제 잊어버리자.
공포가 어느 쪽에도 존재한다면, 우리가 풀어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을테니까. 답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미 알고 있다. 쿠엔틴 같이 당신을 해하려는 사람은 이 세상에도 널렸다. 영화관을 나와라! 그 환한 빛으로.
(꼭 행운의 편지 같군 - 미듬이)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