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우리들의 일그러진 학교를 기억하나?
글: 유재영
2004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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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유신 말기, 강남의 개발붐에 편승해 강남으로 이사를 온 현수는 정문고로 전학을 오게 된다. 처음 등교하는 날, 현수는 버스 안에서 이웃 여고생 은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은주를 보면서 느꼈던 행복감도 잠시. 정문고 교문 안에서는 급우간의 잔인한 세력다툼과 교사들의 무자비한 구타가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심한 모범생 현수는 역시 이소룡의 열혈팬인 학교짱 우식과 친해지면서부터 학교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첫사랑 은주가 우식의 연인이 돼 현수를 슬프게 하고, 아비규환의 교내에선 그를 분노시키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친구>와 닮아 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엔 소설에서처럼 권력과 인간간의 관계에 대해 고착하지 않으며, 영화에서처럼 폭력을 해부하지 않는다. 대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시대적 유행 키워드들과 캐릭터들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남자들의 우상이었던 이소룡, 학생들의 감성에 살을 붙였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 버티고 있던 고고장과 불법 음란서적이 그렇고 싸움 하나로 급우들을 제압하는 학생,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사들의 애정을 받는 학생과 학생을 편애하는 교사들, 버스 속에서 만나는 예쁜 여고생 등이 또한 그렇다. 이들이 영화에 리얼리티를 부여한다면, 주인공 현수의 슬픔과 분노, 눈물겨운 복수는 이 모든 영화적 요소들을 주도해 가며 드라마를 완성한다. 다행히 캐릭터가 살아있어 당시의 시대상에 고개를 끄덕였던 관객들은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현수의 감정선과 동행하거나, 현수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수를 연기한 권상우에게 주목할만 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말 한 마디에 눈빛이 흔들리는 섬세함은 특유의 반항아적 기질과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로 TV와 스크린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현수가 돼 있었다. 마치 장동건이 영화 <친구>를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각인시켰듯, 그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의 역할을 몸매와 스타일이 아닌, 연기로 소화하면서 스타에서 배우로의 전이를 가늠하게 한 것이다. 유하 감독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계에 제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권상우는 현수를 통해 충무로에 제대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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