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왕 프리실라>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이 공존하는 삶을 꿈꾸며
글: 이주섭
2000년 01월 05일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 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
-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이 공존하는 삶을 꿈꾸며
감독: 스테판 엘리엇
출연: 테렌스 스템프, 가이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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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세 명의 쇼걸들(두 명의 드랙퀸과 한 명의 성전환자)가 사막을 횡단하면서 펼쳐지는 갖가지 에피소드 속에 보기드물게 동성연애자들의 삶을 밝은 색채로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병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동성애자들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 해도 그들이 동성연애자로서 이 사회에서 겪는 고통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동성애 자체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영화들( 결혼 피로연, 모리스, 인 앤 아웃.....)에서 동성연애자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그들의 은폐하려는 노력 자체가 영화의 주요내용을 이룬다. - 동성애자들의 고통이 엄연한 현실이고 보면 그들의 현실을 어둡게 묘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으므로 여기서 그런 관점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들의 삶의 긍정적인 부분들, 그들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프리실라'의 주인공들은 기꺼이 다른 이들의 시선 앞에 자신들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여성성을 사랑한다. 미찌, 버나댓, 아담은 눈이 휘둥그래진 채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화려한 의상과 굽높은 구두로 치장한 채 즐거운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다른 영화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보여지는 대상에 불과했지만(그들은 기이한 타자일 뿐이다) '프리실라'는 동성애자들이 주체가 되어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된다. 그들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킹협곡에 오르는 것은 인생에 대한 강한 긍정과 삶의 주체가 되는 선언이다.
'프리실라'는 좋은게 좋다는 식의 무책임한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아니다. 동성애자들에게 냉담한 현실과 내면의 고통(우스꽝스러운 병원꿈 장면에서 우리는 미찌의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한 불안을 확인할 수 있다.)을 충분히 묘사하면서 그 안에서 극복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어 현실적인 질감을 잃지 않는다. 호주에서 동성애자들의 위치가 어떤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AIDS fuckers go to home'이란 낙서에서 보여지는 노골적인 경멸은 그들이 이 땅에서 활보하는 것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숱한 고난(쇼에 대한 냉담한 반응,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에 의한 린치, 버스에 쓰여진 욕설...)에 처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옷차림에 놀라 떠나버리는 차 앞에서 농담을 던지고 쇼가 외면당한다해도 위축되거나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해도 결국은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도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의지와 긍정으로 이 땅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남아있는 나날은 그저 행복한 나날들이 아니라 그들의 강한 의지에 의해 극복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버나댓은 새로 시작하는 결혼에 대해 불안을 안고 있고 미찌는 주위의 시선을 감당하며 아들을 이끌고 쇼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동성애자들의 연대가 중요시됨은 물론이지만 배타적인 집단을 이루기 보다는 기꺼이 쇼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들을 열어보인다. '프리실라'는 동성애자라는 경계 자체를 허물고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정의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지점에 서있다. 미찌와 아담은 버스 앞에서 춤을 추며 자신들이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미찌는 아내와 아이까지 있고 동양인 아내와 결혼했던 밥은 성전환자인 버나댓과 결혼한다.(밥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관객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그가 동성애자라고 정의내리는데 그다지 중요성을 두지 않는듯 하다) 미찌와 아담과 함께 하는 아이의 존재는 이성애자들끼리의 결합과 그 안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구성된 기존의 가부장제의 틀을 깨버리고 새로운 가족형태를 제시하는 급진적인 면을 보인다. 주인공들이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급진성을 눈치채기 어렵지만 프리실라는 동성애자들의 가정(아이와 함께하는)이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 프리실라가 이 세상에 던져주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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