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글: 강희태
1997년 02월 01일

감독 : 김응수

너무도 늦게 이 글을 보내게 되는구나. 원래는 그날 영화를 다 보고 같이 얘기를 했으면 했는데 영화가 너무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그렇게 못했어... 피곤한데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자고 해서 되게 미안하기도 했구... 아마 다음에 영화 같이 보러 가자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졌을걸? (히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 얘기를 하자꾸나.

이 영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할까나... 이 영화를 단순히 스토리 전개만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정말 시시한 영화일꺼야. 별로 스펙타클한 내용이 없으니까... 고작 있어보았자 극중에서 기웅이라는 사람이 자살하는 내용이 가장 극적이어야 하는데 화면 처리한 것을 보면 전혀 극적이지가 못해. 그 장면을 보면 죽기 전의 기웅의 모습은 전혀 고뇌하는 모습이 아니고(그냥 화장실에 가는 사람 같이 표현되어 있지) 죽어 넘어진 기웅을 보는 은정이라는 사람의 슬픔 같은 것도 전혀 나타나 있지 않으니까(중간에 그 장면만 본 사람은 그것이 자살하는 장면인 줄 꿈에도 생각 못할껄. 계속 보던 사람들도 기웅이라는 사람이 죽은 건지 아닌지 잠시동안 헤깔렸을테니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무런 내용없이 80여분을 지속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 바로 이 부분이 보통 우리가 보던 영화들과 크게 다른 점 중에 하나지. 보통 헐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영화들은 "간단한 얘기"를 "아주 자세하세 설명"해주는 반면 이 영화는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자주 생략하거나 암시로만 설명해"해주는 "불친절함"이 눈에 보이지.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가 직접 보여주는 것만 보아서는 안되고 그 뒤에 숨어있은 것들을 보아야해.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 영화에서 생략된 이야기 찾기, 그리고 영화가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는 시대 상황과 인식을 이해하기, 인물들의 내면 심리 파악하기, 영화에서 비유를 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 파악하기 등등.

이 영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참 막막하구만......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야겠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전문 용어로 '자동기술법'이라 하더군.

이 영화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영화들이랑 틀릴꺼야. 우선 재미없고 (히히~~).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지. 흔히 이런 류의 영화를 "독립 영화"라고 하지. 독립 영화라... 그게 무얼까? 독립 영화란 보통 "자본"으9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그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가 바로 독립영화인데... 왜 자꾸 이 내용을 강조하냐면 그것이 영화의 내용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은 그 내용의 간결함에 비해 너무나 중요한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지.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봐. 무엇이 달라지는가... 자~ 생각해 보았니... 너의 생각은... 어느 정도까지는 예상했겠지. "자본" 즉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영화는 "의존"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지. 우선 나빠지는 것부터 잠깐만 얘기를 해볼까? 우선은 돈 많이 들여서 만들 수 있는 그런 스펙터클한 장면이 불가능해지겠지.(사실 차 한 대 부서지는 장면만 연출할려고 해도 돈이 엄청나게 깨지잖아.) 또 유명 배우 같은 사람들은 못 쓰고.(그런 사람들 쓰려면 몸값이 보통 억대로 노니까) 결국 무명 배우나 아니면 정신 나간(?. 즉 돈을 안 받는) 유명 배우를 쓰게 되겠지. 결론적으로 영화가 재미없어질 가능성은 대빵 커지지. 사실 그래서 독립 영화 하면 재미없는 영화란 이미지가 붙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생각 있다는 사람들은 우리 영화 현실을 개탄하면서 독립 영화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어. 독립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적음에도 말이야.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독립 영화에 어떤 긍정성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 긍정성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니... 자너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음을 계속 읽어봐...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내 생각만 얘기를 해볼께. 자본으로터 독립이 되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해. "자유"라... 그러면 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 좀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구나. 우선은 "관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 관객으로부터의 자유라... 영화란 분명히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관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니 이거 사이코 아냐? 의아스럽지 않니?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보렴. 과연 지금 흥행을 달리고 있는 영화가 정말로 제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가 하고 싶은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또 정말로 틀에 박히지 않은 언어를 지닌 영화를 원하는 관객은 그런 영화를 볼 수가 있는가를... 나의 대답은 '아니오'야. 너의 대답도 그렇니? 관객으로부터의 자유란 바로 여기서 사고를 해야 될 것 같아. 관객으로부터의 자유란 바로 이 틀에 박힌 일상성으로부터의 탈출이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사랑과 이별의 변주곡, 그리고 깨트리고 깨지는 액션의 세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만 해. 왜냐구? "자본'에 의존을 하면 당연히 들인 돈을 뽑아내야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감독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언어와 이야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우리의 기호에 맞추어야 하거든. 이건 돈을 "투여한 사람으로부터의 자유"와 맞물려 있겠지... 이런 자유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 통념으로부터의 자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군.

너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니? 하긴 영화의 전략 중 하나가 그것이 환상이건 아니건 우리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이 있으니 그런 경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자주 보는 영화들은 거의 비슷한 주제를 변주해 가면서 우리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느껴 보라고 얘기하고 있어. 하지만 그 주제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너무나 뻔해. 안 그렇니?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너의 모습도 지금까지 무언가에 의해(그것이 제도 교육일 수도 있고, 아니면 거기에서 일탈한 대중 문화일 수도 있지. 이 두 가지는 서로 달라 보이지? 그런데 강내희라는 교수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그 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서로 배격해보이는 듯하지만 서로서로 보완해나가면서 무언가를 구축하고 있다고. 그 무언가를 보통 이데올로기라고 하지.) 주조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보아야 해. 그렇다고 지금 당장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꺼야 왜냐면 아직 어디서부터 자신이 주조되고 있는지 발견하는 작업이 덜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히 책상에 앉아서 고민만 하지 말고 자꾸 자기가 가진 틀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을 해야해. 내가 이런 말 한다구 미팅을 많이 하거나 못해 보았던 향락적(?) 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닌 줄은 알겠지? 그거 모르면 바~보~(히히~~). 독립 영화는 바로 이 부분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지. 앞에서 얘기한 틀에 박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바로 금지된(그것이 법적으로 강제되었건 아니면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해 강제되었건 간에) 이야기들을 할 수가 있어. 그래서 어떤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삶과 마딱뜨릴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래서 보통 독립 영화는 되게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어. 그것이 돈이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어. 나랑 별로 상관없는 환상에 취해서 영화에 심취하게 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의 이야기를 들추어서 한 번 더 곤혹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독립 영화의 전략이자 매력이 아닐까? 독립 영화가 얼마나 금지된 것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지 보려면 좀 촌스럽기는 하지만 "파업 전야"라는 영화를 한 번 봐. 그리고 아직 나도 못 보았는데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도 볼만 하다더군. 이 두 영화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던 영화들이거든.

혹시 조혜정 교수라고 아니? 저번에 우리 학교에 와서 강연도 했었던 교수. 그 교수님이 서편제 영화를 보고 그것을 문화사적으로 분석해 놓은 글("글읽기와 삶읽기 2"라는 책 중에 있지. 출판사는 또 하나의 문화)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 이제는 관객 백만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 십만 동원이 목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고. 그럴 때 우리 영화가 발전할 것이라고.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를 이해했으면 갑자기 내가 왜 뚱딴지처럼 이런 얘기를 했는지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을 해. 그렇지? 역시 똑똑해.

와 너무 독립 영화에 대해서 길게 써놓은 것 같다. 쓰는 나조차도 잘 모르면서 말이야. 하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대빵 중요한 내용인 것 같으니까 잘 새겨두렴.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라는 영화도 독립 영화라고 하더라. 2억인가를 들여서 만들었는데 대기업이나 충무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아는 사람들 돈을 끌어모아 만든 영화래. 그래서 이렇게 재미없고 흥행성 떨어지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거지. 배우들도 네가 하나도 몰랐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거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나왔던 김선재라는 사람만 빼고는 모두 왕초보들이거든. 공무원인 성준이라는 사람과 노동자역의 완구라는 사람이 대사하는 걸 보면 이건 대사를 하는게 아니라 책을 읽는 것 같잖아?(하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의 일상일지도 몰라. 사실 우리들도 전문 연기자처럼 그렇게 말을 자연스럽게 잘 하는 것은 아니잖아?)

자 이제 독립 영화 얘기는 접어두고 다른 얘기를 할까?

우선 영화에서 보여지는 생략, 비유 등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지. 사실 이 영화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야해. 그러지 않으면 내용 전개에서 제일 중요한 베이스를 놓치고 말고, 그래서 결국은 영화가 끝나면 저게 무슨 내용인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전혀 이해할 수가 없거든. 영화에서 생략된 내용을 먼저 보자. 사실 생략은 안 되어 있지만 너무나 중요한 얘기를 이 영화에서는 건성으로(!) 넘기고 있어. 뭐냐면 바로 80년대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지. 누군가의 배신에 의해서 진호라는 친구가 죽었고, 선재가 진호의 애인이었다는 사실. 이 사실을 파악을 해야 영화가 좀 이해가 될 듯한데, 사실 이걸 파악하는 것이 참 어렵게 되어 있어. 그냥 잠깐의 회상이 애매모호하게 스쳐지나가고, 인물들이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그 얘기를 툭 툭 던지고. 이런 기억이 극중 인물들의 생각을 내내 지배하지. 또 하나 상당히 애매모호한 그리고 완벽하게 생략된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배신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거야. 기웅이가 자살을 한 것을 보면 그가 배신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닐 수도 있고. 참 모호하지.

또 비유되고 있는 장면을 볼까? 사실 감독이 장면 곳곳에 비유적인 표현을 숨겨 놓았을텐데 나는 얼마 찾지 못했어. 가장 먼저 송년 파티를 위해 별장으로 가는 장면. 거기서는 우리 현실을 아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했어. 성준 알행이 탄 고급 승용차, 중기 일행이 탄 똥차, 그리고 노동자 완구씨가 탄 자전차(!). 자전차가 먼저 출발하고, 그 뒤에 똥차 그리고 그 뒤에 고급 승용차가 출발을 하였을 테지만, 자전차는 너무 느리고 똥차는 중간에 가다가 고장이 나고, 고급 승용차는 거침없이 달려가고. 그래서 결국 목적지에 닿는 순서는 다 반대가 되어버렸어. 이것은 그것을 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성실한 사람들이 늦게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 주는데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아주 중요한 비유가 하나 더 있지. 바로 햄릿 이야기에 대한 비유. 극 처음에 중기와 선재가, 그리고 극 후반부에 중기가 기웅의 자살 후 혼자 연극하듯이 할 때 바로 햄릿 연극 대사를 빌어서 하지? 사실 나는 햄릿을 안 읽어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어. 그런데 여기서 잠깐 다른 친구의 말을 빌어보자면 햄릿에서 햄릿은 왕자였고 그 왕국의 한 신하의 딸인 오필리아는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였던 것 같고... 또 햄릿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 같던데... 그런데 햄릿이 작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작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데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그의 작은 아버지로 잘못 알고 죽여버렸다더군... 자 이것을 영화 속의 내용과 접맥을 시켜보면 왜 중기와 선재가 그런 연극과 같은 아리송한 대사를 하였는지 대충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중기는 햄릿이고, 선재는 오필리아이고... 또 중기가 자신이 고문 후에 부는 바람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진호라는 친구는 오필리아의 아버지고. 자신이 부는 바람에 선재가 사랑하던 진호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거지. 그러니까 이 영화는 햄릿의 이야기를 적절히 변형을 가해서 사용하고 있는거야. 이것을 파악하면 영화가 더 흥미진진해지지.

그러면 왜 감독은 친절히 설명해 줄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도 불친절하게 생략하고 숨겨놓고 하는걸까? 그거야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것이 바로 감독이 가진 영화 언어에 대한 생각이고 그것을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신있게 표현한 것뿐이라고. 사실 나는 그런 감독의 태도가 맘에 들어. 시대를 앞서나가고 있다고 할까? "봉건적" 시대 인식에 있으면 감독은 신파조로 우리에게 "호소"하고, 근대적 시대 인식에 있으면 우리에게 세세하게 설명하고 우리를 "계몽"시키려고 하고, "탈근대적" 시대 인식에 있으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감독은 과감하게 생략과 비유의 묘미를 발휘하지. 바로 감독은 그런 탈근대적 인식을 체득하고 그것을 몸소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해.

자 이제 이야기가 막바지로 접어들어가니까 좀 지루해도 끝까지 들어봐.

이제 내용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해보자. 이 영화의 내용은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운동권들이 90년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거야. 실제로 연기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 운동권이었고. (감독 자신도 우리학교 총학생회 홍보부장이었고, 주인공 중기도 우리 학교 출신인데 88년 남북청년학생회담 당시 남측 대표였데.)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연기가 어색해도 그 연기가 전혀 가식적일 수 없는 것 같아.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니? 과연 그럼 그들은 지금 시대를 어떻게 살고 있을까?

80년대에 그들은 화염병을 들고 최류탄을 맞으면서 거리에서 싸웠어. 하지만 그들은 신념이 있고 이상이 있고 희망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은 지금 30대가 되었고 더 이상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 하나는 바로 자신에게 닥쳐오는 삶의 무게를 느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지. 또 하나는 우리가 지겹도록 들은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 이제는 군부 독재 시절이 아니라 문민 정부가 이끄는 시대이고 한때는 희망으로 보였던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허망하게 몰락했다는 거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바로 방황이 시작된거야. 30대의 방황...... 이 영화를 정말로 제대로 이해할려면 등장 인물들과 이 문제와의 관계를 생각을 해 보아야해. 등장 인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그것이 이 영화의 중심 뼈대인 것 같아. 한 번 생각해 보았니? 성준이랑, 중기랑, 기웅이랑을 비교해보면 될꺼야. 이 부분은 특별히 정리를 안 할께. 직접 "너"의 "머리로 생각"해 보길 바래.

자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의 태도들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을 하니? 이런 평가가 좀 어렵다면 지금의 시대 인식에 대한 너의 견해를 듣고 싶구나. 최영미라는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들을 읽어 보았니? 뭐라 내가 평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것을 쉽게 말하자면 이런 내용인 것 같아. "서른이 되니 이제 학생 때 꿈꾸던 이상과 같은 것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에 묻혀 버렸다.(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 동구권의 몰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거야.)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을 꿈꾸는 잔치를 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현실에서 꿈을 잃어버린 것이지. 이런 시인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어렵다구? 그렇지만 앞으로 꾸준히 생각을 해보렴. 물론 무식하게 무대포로는 안 되겠지. 자꾸 책도 읽어보고 학교에서 특별히 하는 행사 같은 것도 잘 찾아보구 해야지 좀 정리가 될 듯 말 듯 할꺼야.

이런 시인의 태도에 대해서 이 영화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얼핏 보면 이 영화는 그런 현실에 수긍하는 듯도 해. 하지만 그런 시인의 비관적이고 현실 타협적인 생각과는 꽤 거리가 멀지. 감독의 말을 들어볼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증오하는 나의 세대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30대의 지루함을 공유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당신들 행복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숙일까, 아니면 더 빳빳이 쳐들까?...... 나는 좀 소박해지기로 했다. 소리높여 주장할 수 없지만,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인생이란 대단한 게 아닌 듯하다. 결국 비겁함과 이기심을 조금씩 인정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나 나의 세대가 허위에 굴복하고, 그 굴복의 댓가로 받은 안락한 삶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때 나는 그들을 증오할 것이다-감독 김응수

최영미 시인은 과거를 버리고 현실에 순응하며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만, 김응수 감독은 그들의 일상에 대해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는거야. 좀 짖궂긴 하지? 하지만 그것이 더 진실한 태도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질문이 과연 80년대 세대들에게만 유의미한가? 90년대 세대인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그건 각자 찾아야겠지. 10년을 먼저 살았던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투영해 볼 수 있으니까.

자 이제 진짜 마지막 이야기야... 감독은 그럼 아무런 자신의 개입 없이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만 보여주는 역할에만 그치고 있는가? 그건 아닌 것 같아. 감독은 개입을 통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떻게 보여 주었으냐고?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음 두 가지가 그런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개입한 장면이 아닐까해.

먼저 화면을 볼까?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흑백화면이 오래 지속되"지. 내용의 지루함과 더불어 이는 영화를 점점 더 재미없게 만드는데...... 그러다가 끝나기 한 몇 분 정도 전부터 칼라 화면이 이어지는데...... 과연 감독이 괜히 이렇게 화면을 만들었을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끝에만 컬러로 할 돈이 남아서 이렇게 했을까? 아마 아닐꺼야. 무슨 의도가 있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끝나면서 흑백의 지루함과 절망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무언지는 모르지만 생생한 생명력이 전달되는 칼라 화면으로 바꾸면서 바로 현실을 희망적으로 사고하고 개입하자는 감독의 생각이 개입된 것이 아닐까해.

또 다른 하나. 왜 하필이면 감독은 배경 장소를 서울이 아닌 모스크바로 정했을까? 모스크바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일꺼야. 바로 희망을 꿈꾸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절망과 혼돈을 몰고 왔던 바로 그 공간. 그런데 그 공간은 구체적이지는 못해. 구체적인 곳은 바로 현실 개입을 했던 바로 서울이지. 모스크바는 그들의 사고를 지배했던 일종의 상징물이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혼돈을 품고 고민하며 살고 있어. 그런데 끝에 가서 중기는 그런 모스크바를 벗어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이것은 지금까지의 혼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다시 도피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구체적 현실이 있는 서울로 간 것이 아닐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긴 방황이 아무런 해결점 없이 겉돌다가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전력할 일을 깨닫게 된 거야. 이것이 바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희망의 메세지가 아니겠니?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사람들에게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젊음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어 30이 되어도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때로는 안락한 삶 속의 자신을 질책하면서. 그래서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간은 영원히 죽어서 정지한다!"

97/4/14-15. 희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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