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서로를 거스르는 약속

리뷰

<친구> 서로를 거스르는 약속 :::

윤상열 | 2001년 04월 09일
조회 3621

그들이 왜 서로를 친구라는 이유로 배려하며, 아끼고, 기억하는지 준석(유오성)와 동수(장동건)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딘가 모르게 마도로스와 같은 부산의 도시적 감수성이 서글프게 자리하고 있으며, 상택(서태화)을 통해 들려지는 나레이션 또한 그 자장 안에 똑같이 가두어져 있는 답답함은 어디서부터 묻어나는 것일까?

준석와 동수, 상택과 중호를 묶는 커다란 인연의 고리는 친구라는 사전적 정의가 강하게 내리쬐는 단어와 그들이 자란 부산이라는 도시 밖에는 없다. 여타의 영화들이 유년기의 질곡을 그려낸 것과는 조금 다른, 일반관객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어 가는데 크게 무리가 없을 만큼 영화는 네 인물의 다난했던 지난날을 무리 없이 소화하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다는 안이함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준수와 동수의 강한 무스크빛 카리스마에도 힘입은 바가 크지만 잿빛 노을빛으로 가득한 부산의 정서적 이미지 또한 영화를 이끄는 하나의 축이 되 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을 이끌어 주는 부분의 연결고리는 매우 어색하게 보여진다. 마약 중독자의 모습으로 완전히 폐인으로 변해버린 준석의 느닷없는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그들의 성년의 출발은 부산의 이중적인 뒷모습으로 산재해 있는 항구도시의 이물적인 이미지(80년대 최대의 히로뽕 공급처이자 수송 루트였던, 그리고 최대의 투여자가 공존했던 부산의 이중성)로 투영된 준석의 룸펜으로의 돌변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뿐만 아니라 상택과 중호를 회화화 하기에도 불충분한 요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거기에는 암흑세계의 중간 보스로 일취월장해 수려한 모습으로 뒤바뀌는 변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준석의 변화에도 뒤틀린 이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과거의 친구를 기억하는 수수한 회고와 비교해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

또한 상택으로 대표되는 친구의 모든 조건은 진숙을 상택에게 소개해 주는 부분에서 동수가 준석에게 던지는 물음 "나는 뭐꼬?"에 대한 준석의 답에서 적나라하게 들춰진다. 그것은 준석에게 있어 동수를 두고, 상택을 위시한 얘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이루어지는 동수와 준석의 파벌간의 암투의 모든 전제이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를 이끌어주는 동수의 죽음에 관한 원인이기도 한 그러한 복선은 동수의 죽음이 단지 친구라는 보통의 일반적인 단어에 영화적 중량감을 실어주기 위한 사건으로 밖에는 치부되지 못하는 경량화를 일으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장동건이라는 스타급 배우를 기용한 것은 일단은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 스스로가 갖고 있는 무게감으로 인해 관객들이 그 부분을 가볍게 뛰어 넘지 못하도록 대중적 안정장치를 새겨 놓은 것이다. 곽경택 감독 역시 영화의 모든 전형적 쌈마이 요소를 그곳에 집중적으로 투여한 듯한 몰핀 효과를 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서로를 거스르는 관계로 복원되며, 마지막에서야 그것이 약속이 되 버렸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영화 '친구'는 친구라는 관계가 우정과 의리로 상징되던 '영웅본색'의 신화에서 쌈마이들의 오랜 숙원으로 비춰지던 신의(信義)에 관한 정의까지를 담고 있는 연장선에서 이해하기에는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과거의 종착역이자 플랫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두운 극장 안의 현실에서 그들과 내 주위를 살펴보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영화 '친구'는 기립박수보다 일단의 흐뭇함과 과거의 회한에 대한 설레임을 동시에 갖게 끔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