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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내 여자, 그녀의 남자, 10년만의 해후 :::


양유창 | 2001년 05월 03일
조회 3834


이 남자. 고풍 있는 영국식 악센트에, 박학다식하고, 오페라를 즐기며, 여인과 함께 단테의 소네트를 이야기하고, 피렌체의 한 도서관에서 중세의 예술에 대해 강의하고, 의학을 전공했으며, 완벽한 해부학적 지식을 갖고 있고, 적당히 귀품있는 외모에 예의 바른 매너를 갖춘 중년의 독신남. 취미는 사람을 뜯어 먹는 것이고, 경찰을 포함해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십여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 남자의 여자. 부모를 잃고 고통스런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FBI 특별 수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한니발 렉터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날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한니발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10년을 바쳐 FBI에 근무하며 직장과 일 외의 모든 것을 포기한 여자.

생각해보자. 세상에 한니발 렉터와 같은 남자가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또 클라리스 스탈링 같은 여자가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토마스 해리스는 왜 한니발 렉터 박사를 은둔생활에서 부활시켰을까? <양들의 침묵>으로부터 10년. 알레고리와 정신병리학으로 가득했던 전작의 아우라가 포스터리즘과 한니발리즘이라는 조디 포스터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대한 상찬으로 이어지던 그때, 뻔한 변태영화에서 오스카 작품상으로 격상된 영화에 대한 최대의 예우가 정말 이런 것이었을까? 10년 후의 속편 말이다.

<한니발>에서 렉터 박사는 인육에 대한 고귀한 탐구정신이 팽배하던 <양들의 침묵>에서와는 달리,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고 카리스마 넘치는 로맨티스트로 그려지고 있다. 사람 머리를 갈라 뇌를 잘라 먹는 유머러스함, 재빨리 소매치기의 손목을 낚아 채는 기민함, 여자의 손목 대신 자신의 손목을 자르는 로맨스 등을 보여주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렉터 박사는 더 전편보다 우스꽝스러워졌고, 기인으로서의 면모를 잃었다. 마치 <배트맨 포에버>에서 전편까지는 진지하던 배트맨이 갑자기 씩 웃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것이야말로 헐리우드적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적당히 유럽의 운치를 감상하고, 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적당히 고급스러운, 하지만 결코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지껄이며, 300만 달러에 자신의 직함을 내던지는 이탈리아계 형사반장이 결국 살해되는 미국적인 사고와 헐리우드가 전세계에 수출한 대표적인 브랜드인 FBI 내부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소재까지. 헐리우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고 있는 영화가 <한니발>이다. 오죽하면 이탈리아인들도 '본조르노' 같은 인사말을 빼고는 모두 영어를 쓰겠는가.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계산적으로 미국 관객을 위해 배치된 것일 터이다. 정시에 출퇴근하는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고학력 직원들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조사와 토의를 벌이겠는가 생각해보라. 시나리오를 쓴 데이빗 마멧과 스티븐 자일리언은 러닝 개런티를 요구해도 될 정도의 헐리우드 1급 각본가들이며, 스탭들 중에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비교적 많다. 감독 리들리 스코트는 <글래디에이터> 이후 또다시 이탈리아를 찾았으며, 물론 그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와는 전혀 다른 고풍스럽고 오싹한 피렌체다.

이런 풍경들과 사실들, 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것은 카니발리즘과 인간 본능적인 타자에 대한 공포이다. 카니발리즘은 복수의 이미지와 연관되어서 스릴을 주는 장치로 쓰였다.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얼굴이 흉칙한 메이슨이 돼지에게 먹히는 것이라든지 레이 리오타가 분한 법무국 사무원이 줄리안 무어가 보는 앞에서 뚜껑이 열리는 것 등은 '복수'와 관련된 이미지들이다. 타자에 대한 공포는 한니발과 메이슨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지만, 가장 극적인 것은 역시 한니발과 클라리스가 마주치는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싶다. 10년을 애증관계로 서로를 추적해온 이들은 흔히 추적영화의 형사와 범죄자가 우정을 나누는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를 구해준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쌓아가는데 익숙치 못한 고독한 독신남녀인 이들은 절대 서로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수록 더 아파하고 더 강해질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니발>은 내면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종류의 영화다. 평온한 일상에 숨겨져 있는 칼리가리 박사의 괴물 같은 존재라고 할까. 첫 장면,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는 메이슨과 수사관들을 보라. 마치 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고전영화처럼 고풍스런 미장센을 자랑한다. 어느 누가 그들이 인육을 먹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공포는 아주 일상적이고 고급스러운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아메리칸 싸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뉴욕의 상류사회에서 명함 한 장 때문에 그랬던 것처럼, 렉터 박사와 파찌 반장이 중세 이탈리아의 혈통을 이야기하는 동안에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싸이코나 한니발 렉터는 자본주의 내부에 살아 숨쉬고 있는 적이다. 돈 많고 박식한 그들은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풍요 속에서 잔혹함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미녀와 야수>의 우화처럼 한니발과 클라리스는 사랑을 확인하자마자 헤어진다. 서로를 알아갈수록 더 끌리고, 매력을 느낄수록 자신에게 더 강해지는 *라비크와 조안처럼 서로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지만 오히려 평온 속에서 멀어져간다. <양들의 침묵>이 좀더 내밀하게 이 과정을 다루었다면, <한니발>은 그보다 조금 더 직접적이다. 아무래도 10년만에 만난 둘의 감회가 남달랐겠지만, 어쩌면 그 탓에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를 끌고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라비크와 조안: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의 두 주인공. 1940년대 파리의 불법체류자인 독일계 유대인 의사 라비크와 애인을 잃고 러시아에서 온 조안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는 관계다. 결국 권총에 맞아 죽는 조안을 라비크가 안락사시킨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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