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렉> 회치는 기분이야! :::

윤상열 | 2001년 06월 29일 조회 5223
이 영화는 배설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 말에 처음부터 화장실 유머를 들먹일 작정이라고 오해하지말기를 바란다.) 미국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지존(至尊)의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디즈니라는 거함을 무너뜨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반디즈니(anti-disney)라는 형태와 비디즈니(non-disney)형태로 나뉘어 매년 각 유수의 영화사들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되고 실행되어 왔었다. 20세기 폭스에 의해 94년과 97년에 치러진 이러한 한 판 승부에서 "페이지 마스터"는 재개봉한 "라이언 킹"에 의해 도살되었고, "아나스타샤"는 "인어 공주"라는 재뿌리기 시약을 머금고서 돌연사 해버렸다. 어쩌면 96년에 개봉한 워너의 "스페이스 잼"은 그러한 노여움에서 한 발짝 물러선 뒤에서 조용히 실속을 차린 셈이였다. 문제는 폭스에 의해 무너지지 못한 디즈니의 아성에 대한 반성이였다. 그것은 최고의 마케팅 보조비를 들인 "아나스타샤"가 어느 방면에서 디즈니의 역대 작품들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라는 자조 섞인 푸념들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의 근본에는 'anti' or 'non'라는 두 가지 형태에 대한 방향설정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궁극적인 작품의 컨셉과 대안이라는 기수를 어디로 맞추어야 했을 것인가. 라는 쟁점이 부각되기에 이른다. 결국 'anti'와 'non'에 대한 올바른 정의로부터 출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anti)이라는 접두사의 의미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이 아니라 산업 경제적인 차원에 속해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아나스타샤"는 대안이라는 개념보다는 경쟁이라는 개념이 더 들어맞는 영화였으므로 우리에게 디즈니 이외의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헐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미학과 논리를(그것도 디즈니의 모든 것을) 은근히 차용했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였다. 물론 이제부터 이야기할 "슈렉"이 그 모든 역설에서 혹은 그 비슷한 사안에서 우리가 바래왔던 대안이라는 거시를 성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묘히 변형된, 또한 직접적으로 들어내고 있는 라이브 액션의 꿈틀거림 속에서 제프리 카젠버그의 디즈니를 향한 배설의 욕망을 듣고 있노라면 충분히 상징적인 그 비디즈니(non-disney)노선의 오마쥬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 카젠버그가 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여 1998년 첫 선을 보인 "이집트의 왕자"는 매우 고답적인 분위기에서 초대형 뮤지컬을 실행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그가 자신의 첫 수완을 발휘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물론 뒤이어지는 "개미"와 "엘도라도"역시 그러한 중압감에서 작업을 수행했으라는 짐작은 가지만 실제로 그의 행보와는 달리 디즈니와 별반 다를게 없는, 그저 눈길 끄는 대형애니메이션이었다는 점 밖에는 시사하는 바가 없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그가 배워왔고, 키워왔던 디즈니의 상술을 그대로 배껴 먹는 뒷간의 쌀독을 축내는 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가 비밀리에 추진중인 프로젝트에 관한 의구심이 점점 더 증폭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는 "포카혼타스"이후 애니메이션의 대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하지만 어이없게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곤두박질치고 있는 디즈니에게 무언의 시위용과 압박용으로 작용하기에는 더없는 호기의 순간 이였던 것이다.
이미 "슈렉"은 온갖 방송 매체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깐느에서 왜 이 영화가 경쟁부분에 올랐는지, 왜 환호를 얻어냈는지는 별반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일반 극장에서 소비하는 계층이라면 말이다. 다만 위에서도 계속해서 언급했듯이 "슈렉"은 독자적으로 자신을 돌출시키는 영화는 아니다. 무언가의 비교 대상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얻었다고나 해야 할까. 물론 이것은 크게 보아 상투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과장되거나 문화적 텍스트쯤으로 그 변화를 추이하기에는 한층 더 세련되고, 분화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슈렉"의 인물들은 자신들만의 특유의 빛과 색으로 자신들이 3차원과 3D의 경계선에서 누군가의 응시의 대상이 되었을 때 충실하게 준수된 내러티브의 고전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개별적이고도 무한히 잠재된 자신들만의 리얼리티로 모든 것을 관객의 눈앞에 펼쳐 놓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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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열 아..아름다워라....
여..여자가 그렇게 보일 때...
사..사내는 그 여자를 본다...
아..아직도 모르는가 그대는...
여..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사..사랑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삶이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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