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유영길 감독의 영화

리뷰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유영길 감독의 영화 :::

이종열 | 2001년 10월 10일
조회 4830

내가 좋아하는 소리. 비오는 날 보리차 물 끓는 소리, 겨울밤 개 컹컹이는 소리, 바람에 창 들썩이는 소리, 산사 풍경소리, 소쩍새 우는 소리,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새벽에 도토리와 밤 떨어지는 소리, 낮잠 잔 후 듣는 학교종소리, 봄날 나른한 비행기 소리….

<봄날은 간다>의 초반부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새가 화면 안에 가득찬다. 가슴을 먹먹케 하는 이 장면은 <봄날은 간다>의 미학적 성과를 읽게 하는 단적인 예가 된다. 눈오는 날의 풍경(風磬)소리도 마지막 보리밭 장면도 한 영화에 얼마나 수고스런 공을 들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은 그 소리와 풍경(風景) 안에 사랑이라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잘 적셔 넣지 못했다.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에선 정원(한석규)이 왜 다림(심은하)이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 다림이는 왜 정원이의 사진관 유리창을 깨는지 잘 드러나 있었다. 마치 산사에 추엽 쌓이듯 차곡차곡. 하지만 <봄날은 간다>에는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가 서로를 사랑하고 헤어지게 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 추상적인 사랑이기에 가능하다는 말은 이 영화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 전과 사랑 후의 디테일한 감정은 잘 드러나 있지만 왜 은수가 상우에게 이별을 고해야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제대로 알려주었어야 했다.(물론 말로 하라는 건 아니다.) 사랑 실패에 대한 두려움? 상우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서? 서로 사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갖고 놀기 싱겁고 귀찮아져서?(혹시 이 모든 이유의 총합이니 알아서 느끼라는 건 아니겠지?) 그 어떤 이유든 카메라는 그 부분에 대해 필름을 더 소모했었어야 했다. 괜히 어줍잖게 식상한 할머니 얘기를 끼워넣기 이전에 말이다.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상우는 "날 사랑하긴 했니?"라고 은수에게 묻는 것이다. 정말 은수는 상우를 사랑하긴 했나? 혹시 그저 라면 잘 끓여주고 착해보이고, 외롭다보니까 호감 가졌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상우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는 더 조악해진다. 그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갖고 논 영화였단 말인가? 허진호 감독은 그걸 말하려던 게 절대 아니었을텐데. 라면 건더기 보다 못해 보이는 나에게 괜한 모함을 당하고 있다.

아무래도 <8월의 크리스마스>는 故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화가 맞았던 것 같다. 사연이 들어있는 깊이있는 촬영, 그것에는 소소해 뵈는 일상의 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의 일상성의 미학은 한 10번 정도 복사한 복사지 같다. [★★☆]

이종열
*취미-비디오 테잎 모으기, 영화일기 쓰기
*해보고 싶은 역할-엑파의 멀더
*내 인생의 영화-수자쿠
*이상형-스컬리+강철천사 쿠루미
*좋아하는 배우-소피마르소, 줄리 델피, 전지현, 조재현, 김유미
*감독-이와이 슈운지, 장선우, 에밀쿠스트리차, 키에슬롭스키, 기타노다케시
*싫어하는 것-아프다는 말, 로빈윌리암스 출연 영화, 가루약, 교복이 어색한 꼬질꼬질한 여중생, 스페이스 A의 루루, 양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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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글쎄요.. (이원희) - 2002/08/19

	음.. 은수가 헤어지는 이유가 불분명하다구요.. 저는 그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봤거든요.. 심리검사 중에서 투사법이라는 검사들이 있는데, 애매한 자극을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대답을 하게 되죠.. 그럼 신기하게도 애매한 자극에 대한 각자의 반응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는건데.. 전 이 영화를 사랑에 대한 투사법 검사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보고나서의 사람들 마다 그 다양한 반응에서 음.. 정확히 공식화까지는 못하겠지만.. 그 사람의 연애 혹은 사랑의 히스토리를 알 것 같았답니다. 자기가 겪은 만큼만 반응하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뭐라고 정확하게 인터뷰 결과를 정리해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본 느낌으로 그 사람이 겪었던 사랑,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건 바로 이 영화가 뭔가 애매모호한 자극이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누가봐도 분명하게 이유를 제시했다면 반응이 크게 몇가지로만 나올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고 반응할 때는 사람을 속마음이 나오게 되어있더라구요. 제 경험에 의하면.. 예를 들어 연애 한번도 안해본 사람들 혹은 좀 행복한 연애하고 바로 결혼한 사람들은 심플하게 누가 나쁘다.. 어찌구 하고 굉장히 재미 없었다.. 등으로 말을 하고, 또 자기 연애 경험이 지옥이었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 경험을 투사하면서 울고, 가슴 찟어지고 난리치더라구요.. ^^ 그냥 제 생각을 적어봤답니다. 음.. 오래된 글인데 우연히 오늘 보게 되었네요.. ^^ 정말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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