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하사탕> 삶은 아름다운가? :::
강희태 | 2000년 02월 11일
조회 1665
- synopsis
챕터1> 야유회. 1999년 봄
"나 다시 돌아갈래" 기찻길 철로 위-영호의 절규는 기적소리를
뚫고... 영화는 1999년 오늘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챕터2> 사진기. 사흘전, 1999년 봄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정으로 죽어버리려 하는 영호 앞에 느닷없
이 나타난 사내... "나 윤순임씨가 보내서 왔어요..."
챕터3>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
가구점 사장 영호. 그는 직원 미스리와 바람피우고 마누라 홍자
는 운전교습강사와 바람피우고...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려
본다.
챕터4> 고백. 1987년 4월
닳고 닳은 형사 영호. 카페 여종업원의 품에 안겨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비를 그 사
람도..."
챕터5> 기도. 1984년 가을
아직은 서투른 신참내기 형사 영호. 그는 자기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이 순임을 거부한다. 마침내 그의 광기가 폭발해버리던
어느날...
챕터6> 면회. 1980년 5월
영호는 전방부대의 신병. 그는 긴급출동하는 트럭에서 면회왔다
가 헛걸음치고 돌아가는 순임의 작은 모습을 보게 되는데...
챕터7> 소풍. 1979년 가을
이야기의 시작, 영화의 끝. 갓 스무살의 영호와 순임. 젊음과 아
름다운 사랑에 대한 순수한 행복감에 잔뜩 젖어있는 두 사람.
(영화 리플렛에서 옮김)
- 박하사탕
박하사탕. 다들 한 번쯤은 먹어봤으리라. 나 또한 어렸을 적 박
하사탕을 먹던 기억이 있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무슨무슨 종
합캔디라는 이름으로 한 무더기의 사탕을 손에 얻게 되고, 거기
에는 박하사탕이 꼭 끼어 있었다. 사실 난 박하사탕을 별로 좋아
하지는 않았다. 젤리 사탕 같이 달착지근한 것을 먼저 먹어치우
고, 그 다음에는 그냥 딱딱한 사탕들.. 박하사탕은 다른 사탕이
다 없어졌을 때 마지막으로 먹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박하사탕의
뒷맛은 아쉬움과 함께 오래도록 남곤 했다.
영화에서 박하사탕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순수한 사랑'이라는
말에 그냥 공감이 간다. 박하사탕의 하얀 이미지와 순수함은 너
무도 어울린다. 더군다나 순임이 입고 나오는 옷은 하얀 색. 모든
이미지들이 '순수한 사랑'으로 통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박하
사탕인가? 오히려 '순수함'을 표현하는 데는 '눈(snow)' 같은 것
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하사탕이 눈과 다른 것은 오래도록 남는 뒷맛이다.
눈이라는 것은 외부 환경에 쉽사리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조금
만 온도가 올라가도 녹아버리고 흙과 섞여서 그냥 지저분하게만
남는다.그래서 '내가 원래 눈이었어?'라는 의문을 품지도 못한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오래 남는다. 80년. 영호는 군에서 순임이 보
내오던 박하사탕을 착실히 모아왔다. 하지만 광주로 출동 명령을
받던 날 박하사탕은 짓밟히고 그것과 함께 영호의 순수함도 점점
퇴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박하사탕의 그런 힘 때문일까? 영호
는 박하사탕의 순수함을 기억해내고 헛된 일이긴 하지만 '나 다
시 돌아갈래!'라고 외친다.
- 절뚝거리는 삶
영화를 유심히 보면 영호는 몇 번이고 다리를 절뚝거린다. 내
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3장면에서 다리를 절
뚝거린다. 99년 순임을 본 후 병원 복도를 내려오면서. 87년 군산
에 시국사범을 잡으러 갔을 때. 80년 광주에서 총 맞았을 때.
총 맞았을 때는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이 느닷없는 절뚝거림
은 뭔가? 이 세 장면 모두의 공통점은 순수함과 쓰린 현실이 마
주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즉 절뚝거림은 물리적인 것이라기보
다는 순수함과 이어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정신적인 것이 아
닐까 싶다.
- 거슬러 올라가기
이 영화에서 특이한 것 중에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다. 영화 중 어느 일부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인 구성이 그러하게 되어 있다. 기차가 거꾸로 달리는 장면을 각
챕터 사이에 넣어서 시간의 거슬러 올라감을 표현해냈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도저히 애정을 보여줄 수 없는 한 사
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그를 그렇게 파괴해 나갔던 우리네
역사에 대해서 쓰라리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구성은 꼭 '모두가 진리가 뭐냐고 묻고 있을 때 도대체
무엇이 진리를 만들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던 니체나 '정상인과 광
인을 구분하기보다는 그것을 갈라놓은 지식-권력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던 푸코가 시도했던 계보학이라는 방법론이랑 닮아 있다.
지금의 영호라는 인물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영호라
는 인물을 그렇게 만들어온 이 사회라는 system에 대해서 성찰
하게 만듦으로써 더욱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 처음과 끝의 순환구조
이 영화에서 처음과 마지막의 공간은 동일하다. 마지막 장면
(시간적으로는 제일 처음)에서 '이 곳에 처음 온 건데 낯설지가
않아요'라고 말하는 영호에게 순임은 아마 꿈에서 보았을 거라면
서 '영호씨의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한다. 또
영호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런 얘기들이 다른
것과 접속되지 않았을 때는 그저 순수함을 보여주는 것들이지만,
이것이 마지막 장면과 접속되어서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하지
만 복선과 암시라는 것이 앞에 존재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던
탓인가? 이러한 것이 산뜻하게 느껴진다.
- 기도의 역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푸하하~'하고 웃게 만드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홍자의 기도 장면이 그렇다. 84년 정사를 벌이기
직전에 주기도문을 외우는 장면과 94년 집들이에서 건배를 하려
는데 기도를 하자는 장면.
기도라는 것은 소망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이러
하게 살고 싶다는. 하지만 이런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홍자의 기도는 그저 웃음거리만 되고 만다. 아니 거기에서만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영호와의 불화에 불을 붙이기까지 한다. 도대
체 이 간절한 소망들을 무참하게 깨뜨린 것은, 그 소망들을 거추
장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무엇인가?
- 자전거, 자동차
영호와 홍자를 이어준 것은 자전거이다. 자전거를 배워주면서
둘은 이어졌다. 영호와 홍자가 삐걱거리게 만든 것은 자동차이다.
홍자가 자동차 운전교습강사와 바람을 피우면서 둘은 삐걱거린
다. 자전거가 자동차로 변하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얻은 것과 잃
은 것은 무엇일까?
- 뒤로 돌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가 84년에 순임을 보
내버리고 영호가 괴로워하면서 홍자네 선술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빙 도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괴로운 마음의
소용돌이는 점점 거칠게 빨라지면서 원을 도는 자전거와 하나가
된다.
그런 영호가 선술집에 들어가 난장판을 벌이면서 술 먹은 이들
에게 외치는 마지막 소리. '뒤로 돌아!' 그의 삶에 가장 깊은 상
처를 남긴 군대 시절. 그 시절의 기억이 묻어있는 '뒤로 돌아!'
하지만 이것은 또한 15년 후에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영호의 마음이 묻어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뒤로 돌아!'라는 말에
술 먹던 사람들은 다들 '미친 놈'이라고 생각할 뿐 아무도 뒤로
돌지 않았듯이 시간도 뒤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 개
형사 시절 영호의 별명은 '개'였다. 87년 그는 정말로 개같이
고문을 했다. 94년 그는 집에 있는 개를 무지 싫어한다. 발로 차
버리기까지 한다. 99년 죽을려고 작정한 영호가 마지막으로 이혼
한 아내를 찾아왔을 때 문 밖에서 개를 애처롭게 쓰다듬어준다.
개 같았던 그의 삶. 과연 그는 그 개 같은 삶을 혐오했던 것이었
을까 아니면 그래도 삶을 사랑했던 것일까? 순수와 타락 사이에
서 갈팡질팡하던 그의 삶만큼이나 복잡하기만 하다.
- 나 어떡해
79년의 가리봉동 공원들의 '나 어떡해'와 99년 또 그 사람들의
'나 어떡해'. 포크기타와 뽕짝노래방, 청년들과 아줌마 아저씨들.
이만큼의 간격만큼이나 같은 노래는 다르게 느껴진다. 20년의 세
월 동안 영호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아름답던 청년들은 다 어
디로 간 것일까? 이제 청년인 우리들. 그 20년만큼의 세월을 이
해해 줄 필요는 있지만 그 20년의 세월을 그냥 인정해서는 안 되
지 않을까? 우리가 2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그 20년
동안 세월에 당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월과 싸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윤도현 밴드가 얼마 전에 낸 한국 rock 다시 부르기의 '나 어떡
해'도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 삶은 아름다운가?
80년 광주에서 한 소녀를 죽인 것으로 인하여 영호의 삶은 망
가져 왔다. 그렇게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 영호는 계속 '삶
은 아름다운가?'를 중얼거려본다. 역사의 큰 물결이 한 개인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컸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삶은 아름다운가?'하고 물어본다. 영화를 보
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삶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말하던데. 그래
도 역사와 삶의 무게에 맞서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직
은 '삶을 아름답다'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뱀발. 아직도 심정적으로도 잘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 사진기 대
목이다. 순임의 남편에게서 사진기를 돌려받은 영호는 사진기를
4만원에 팔아먹는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필름을 햇빛에 쭉 뽑아
서 망가뜨려 버린다. 도대체 이런 행동은 어떻게 생기는 건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간다.
바람따라 흘러가는 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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