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깊고 푸른 외딴 방에 유배된 새 한마리 :::

곽은주 | 2002년 02월 21일 조회 3741
영화를 보는 내내 무척 고통스러웠다(영화를 본 후의 후유증은 더 오래 고통스러웠다)그만큼 영화는 관객을 긴장시킨다. 감독의 말처럼 최근의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칙칙하고 건조'한 영화로 감독은 영화를 되도록 칙칙하고 건조하게 만들기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하여, 화면은 일관되게 칙칙한 회색과 블루톤의 색조를 띄고 있다. 특히 주인공 `김'의 방은 블루색상을 강조했다고 한다. 물론 음악도 최대한 배제하고.
정말 음악과 사운드가 없는 영화다 딱 한번 `레이니 썬'이 직접 출연하여 카페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영화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이런류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에릭 로메르' 등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 애호가라면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에 반할 것이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그만큼 이 영화는 재미있게 `보는 영화'라기보다는 진지하게 정독하듯이 `읽는 영화' 쪽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철저히 객관적인 타인의 시각으로 묶어둔다. 그런 이완 없는 긴장감이 오히려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반면 이 영화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분명 영화는 픽션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에는 너와 나의 너절한 삶이 잔인할 정도로 날것으로 살아 있다. 비루하고 남루하여 도망치고 싶은 일상의 편린들이 깊은 한숨으로 곳곳에 묻어있다. 메마른 가지에 말라 비틀어진 죽은 꽃처럼, 스산한 겨울나목처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철새를 기다리는 텅빈 저수지처럼 춥고 쓸쓸한 풍경의 영화다.
주인공 `김'은 막막한 현실의 폐곡선에 강금당하고 `새'는 오로지 깊고 푸른 김의 방에서만 높이 비상한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던 어린시절의 꿈은 꿈으로 과거 속에 유배된 채. 무력한 현실이 꿈보다 더 허구적으로 다가온다. 박제된 진열장의 새처럼 마치 우리의 삶도 박제된 듯, 아무도 주의깊게 보지않는 복도 끝에 걸려 있는 낡고 빛바랜 액자속 정물처럼 영화는 철저하게 객체로 존재한다. 소설가 정영문의 일련의 소설속 주인공들같이 주인공 `김'은 냉소적이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점이 영화의 감상주의를 차단시킨다. 영화는 춥고 허기지지만 결코 슬프지 않다. 아마 이런 영화적 매혹이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지않았나 싶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속 가상 인물인 소년(김이 구상하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 소년으로 김의 어린시절 모습이기도하다)과 김을 철새보호구역인 주남저수지 방죽에서 만나게 한다. 서로 스치면서 각자 걸어온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 가는 두 사람. 소년은 김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화면에서 사라지고 김은 소년이 걸어 온 길을 걷는다. 야윈 뒷모습을 관객에게 보이며. 현실(김)과 꿈(소년)이 새가 비상하는 곳인 저수지 방죽 어디쯤에서 교차한다. 현실은 꿈으로 꿈은 현실로 서로 아우르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문다. 날지 못한 새 한마리 오늘도 김의 어깨 위에 앉아 그와 함께 고단한 인생 길을 동행한다.
지금은 연기력을 인정 받는 대한 민국의 대표 배우가 되었지만 무명시절의 설경구를 화면으로 만나는 즐거움을 기대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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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은주 1960년생. 젊음의 끝, 나이 마흔에 뒤늦게 영화 바람난 못말리는 영화 중독증 환자. 그 여자 오늘도 빨간 배낭 둘러메고 시사회장을 기웃거린다. 영화의 참맛 그대는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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