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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사랑이 이토록 깊고 슬플 수 있을까? :::


이민우 | 2002년 04월 08일
조회 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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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 어딘가에서 농사 지으시며 사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옛 선조들의 전통과 흔적이 남아있다. 그네들에게 '사랑'은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안으로 삭히며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이 미덕인 감정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잠시 맡겨진 상우에 대한 외할머니의 사랑 또한 그러한 은근함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선조들의 표현 없는 끝없는 사랑을 대변이라도 하듯, 할머니는 벙어리다. 상우는 산골 시골, 허름한 초가집, 바퀴벌레, 요강, 고장난 TV, 지저분하고 벙어리인 할머니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할머니를 놀리고 투정을 부리는 등 못된 행동을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말 못하는 병신이라고 놀림 받아도, 밧데리를 사기 위해 그녀의 은비녀가 없어져도 아무 내색 하지 않는다. 그저 미안하다는 수화로 상우를 어르고 달랠 뿐이다. 어느날 할머니는 상우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상우가 치킨을 먹고 싶대자, 빗속의 먼 길을 걸어 닭을 사와 백숙(물에 빠뜨린 닭)을 해준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백숙으로 상징되는 현대와 전통의 이질성으로 인해 상우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 표현은 이렇듯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세대차이라는 현실적 한계가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할머니는 산골 소녀 헤연을 좋아하는 상우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지 않는다. 할머니를 기다리던 상우는 정차하고 지나가는 버스 뒤로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할머니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왔던 것이다. 상우는 표현하지 않지만, 허리가 휜 채 말없이 걸어가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며 닫아두었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알고보면 상우는 자존심이 세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비가 와서 걷었던 빨래를 비가 그쳐 다시 너는 장면에서 자신이 걷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원래 있던 빨래들의 위치를 기억해 재배열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상우는 헤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할머니에 의해 잘못 깎인 머리를 보자기로 감싸고 자신의 장난감들을 싸가지고 헤연에게 간다. 돌아오는 길. 상우는 헤연이의 엽기토끼를 안고 있다. 그러나 수레을 타고 내려오다가 발을 다치고, 미친소에 쫓기다가 철수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망신창이가 된 상우. 할머니가 엉성하게 포장해준 물건을 뒷주머니에서 꺼낸다. 포장을 뜯으니 자신의 게임기와 그 밑에 허름한 천원짜리 지폐 2장이 있다. 상우는 할머니의 사랑에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할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건넨 엄마의 편지. 막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는데, 이별인 것이다. 떠나기 전날 밤 상우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편지를 쓰도록 글을 가르치고, 눈이 침침한 할머니를 위해 여러개의 바늘에 미리 실을 꿰어둠으로써, 할머니에 대한 뒤늦은 사랑을 실천한다. 다음날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는 상우. 버스 창문을 두드리는 할머니를 억지로 외면한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뒤 창가로 달려와 손으로 가슴을 비비며 미안함을 표현한다.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상우의 진심어린 보답은 이렇게 표출된다.

보내는 이: 할머니, 받는 이: 상우. 상우는 할머니에게 이런 엽서를 보낸다. 글을 쓰지 못하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에서 헤연과 철수라는 존재는 상우가 산골의 삶에 동화되고, 할머니에게 정을 느끼는 데 촉매의 역할을 한다. 헤연과의 만남 후에 상우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낀다. 철수는 상우의 미친소 장난으로 달리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상우를 용서하고, 미친소에게 쫓기는 상우를 구해준다. 즉 이 두 캐릭터는 상우로 하여금 산골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할머니를 좋아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상우는 할머니, 헤연, 철수, 마을 사람들, 주위환경을 접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도시 사람들의 전형인 무관심과 자존심을 조금씩 떨쳐낸다. 할머니의 따뜻하고 넓은 가슴은 자연을 품듯, 상우를 안고 달랜다. 영화는 뚜렷한 극적 전개나 사건은 없지만,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상승하고, 주변 요소들이 그 상승을 돕는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의 작지만 위대한 사랑이 관객의 가슴에 서서히 스며들어 억눌러 왔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뜨거운 눈물로 표출시킨다.

ps) 당신은 지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길을 걷고,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그 모습이 왜이리도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던지요, 자식에게 한정없는 사랑을 주고 말없이 떠나보내는 당신. 저는 당신의 사랑에 마음 속 깊이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이민우
사람들은 내 첫인상을 차갑다고 한다. 실제로 털털함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내 자신은 감상적이고 따뜻하며 허점투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의 미숙한 모습에 실망하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리숙한 면이 사람들을 대할 때 편안하고 솔직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만족한다. 앞으로도 인간적인 이민우는 반드시 지키고 싶은 나의 모습이 될 것이고, 내가 만드는 영화의 색깔도 지극히 솔직하고 인간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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