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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where to Hide :::


양유창 | 1999년 09월 01일
조회 3149


감독: 이명세 / 제작: 강우석
출연: 박중훈, 안성기, 최지우
배급: 시네마 서비스


골목길을 돌아 빠져나오면 다시 어슴프레한 골목길로 이어진다. 그 남자가 저기에 있는 것 같아 쫓아갔는데 알고보면 다시 그 자리에 있다. 마그리뜨나 에셔의 그림에서 강조되었던 미로와 모순의 이미지는 영상화하기에 참 매력적인 소재다. <샤이닝>의 공포의 미로,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미끄러지는 거울 미로, <에이리언 2>의 생존을 위한 우주미로 등.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이야기다. <투캅스> 형사 박중훈과 안성기, [고스트] 형사 장동건, 범인의 여자 최지우. 단순하게 보이는 이 관계는 이명세 감독을 만나 더 맛깔스러워졌다. 인물들은 여전히 수동적이지만 그들을 그려내는 카메라가 오히려 역동적이다. 이명세 감독은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영상에 대한 집착으로 도망자 이야기를 폼나게 그린다.

멋있지만 재미없는 영화

이명세의 영화에는 그런 면이 있다. 그의 감수성은 관객을 내러티브로부터 유린시키는 경향이 있다. 평론가들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나 <첫사랑>, <남자는 괴로워>의 미장센과 형식미를 칭찬할 때, 많은 관객들은 그의 현실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현실 저편으로 멀리 물러나 동화 속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지독한 사랑>은 그런 관객의 냉소를 의식하고 만든 영화였다. 사랑의 집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일견 '이명세의 새로운 시도'를 북돋아주었다. 물론 그가 인물 가까이로 들어오면서 그의 고유한 형식미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해변가에서의 생활은 이명세표 영화의 각인을 찍어주는 세트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독한 사랑>은 새로운 테크닉적 요소 외에는 그다지 얻어낸 것이 없는 영화였다. 이야기는 식상했고 그가 바라보는 현실 역시 지극히 극단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지독한 사랑>의 액션 버전이다. <지독한 사랑>이 멜로에서 이루었던 것을 이명세는 또다른 장르영화 형식을 통해 구현하려 한다. <지독한 사랑>의 감탄할 만한 360도 회전카메라는 여기에서 흑백의 화려한 스텝프린팅, 와이프 효과 등으로 대체되었고, <지독한 사랑>의 집착스런 두 인물은 여기에서는 쫓고 쫓긴다.

하지만 액션영화이면서도 역시나 긴장감은 없다. <남자는 괴로워>처럼 이것은 이명세가 실패한 부분일까? 이번에도 화면 자체에 신경쓰느라 액션버디영화의 특징인 밀고 당기는 재미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인가?

낡은 코미디와 현란한 영상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남은 것은 박중훈의 걸죽한 욕설 밖에 없어 보인다. 박중훈이 중간중간 구사하는 로우 코미디와 묵중한 안성기의 캐릭터가 가끔씩 보여주는 실없는 미소, 그리고 조연밖에 하지 못하는 장동건의 특징없는 캐릭터가 결국은 화면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잘 짜여진 영상에만 감탄하기에 1시간 30분은 너무 길다. 그러나, <지독한 사랑>을 생각해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몰입하기 어려운 화면들은 오히려 반가워보인다. 이명세가 다시 그의 스타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은 MTV, 만화, 액션, 코미디, 스릴러, 서부극 등을 뒤섞음으로써 장르영화의 잡종교배를 근사하게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옛적 서부에서>의 휘파람 음악과 서부극의 대결구도는 철로 아래서 가공할 주먹질의 명장면을 만들어냈고, 히치콕의 스릴러는 골목길에서의 쫓고 쫓기는 상황에 많은 부분 흔적이 묻어 있다. 곳곳의 만화같은 설정, 무성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 90년대 한국 깡패영화의 전통.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미디어에서 차용된 키취들이다. 이명세가 경찰서에서 몇 달 동안 합숙하며 얻어낸 형사의 일상사는 약간의 디테일만을 그려내는 데에 이용되고 있을 뿐, 다시 현실은 스크린 바깥에만 존재한다.

<지독한 사랑>에서 자신의 영상언어 속에 현실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이명세 영화는 결국 다시 현실을 등지며 프레임 속으로 회귀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이명세다운 지점임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차라리 이명세 영화가 더욱 더 만화다워지고 동화다워지기를 기대한다. 그의 상상력이 그의 영화관 속에서 살아 숨쉬며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데에 다른 장애물을 끼워넣지 말기를 기대한다.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가 자기 색깔을 접으면서까지 보편적인 문제에 치열해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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