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예쁜 화면, 진부한 내용 :::
이종열 | 2003년 01월 31일
조회 3603
곽재용 감독의 차기작은 <소나기>가 될 공산이 크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희화화시켜 오마쥬를 보냈던 감독은 이번 <클래식>의 초반을 노골적으로 <소나기>에 헌정했다. 늘 영화 연출 한 편을 꿈꾸던 나는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작품으로 황순원의 <소나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클래식>의 초반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 소망을 완전히 포기했다. 소녀, 첫사랑, 신분차, 낯선 곳으로의 여행, 소나기, 원두막, 업어주기, 개울가, 수박, 무지개, 감기, 짧은 이별 등의 코드는 <소나기>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나기> 이후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녀와 소년은 이후 또다시 만나게 되고,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누군가 죽고, 일기로서 그 후대의 자식들에게까지 사랑을 전염시킨다. 일기를 통한 사랑은 내가 생각해봤던 <소나기> 속편이었는데, 역시 곽 감독은 이 멜로 분야에서 대중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클래식>에 기대하는 바가 많았던 나는 감독의 취향에 만족할 수 없다. 이야기는 너무나 상투적이며, 그 상투성은 식상함에 머물러 있다. 감독의 취향은 자신의 데뷔작인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년)에서 한발도 내딛지 못했으며 오히려 퇴행했다. 감독은 멜로의 바다에 빠져 관객들을 같이 빠뜨리려 한다. 그러나 나는 <클래식>이 감정의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절제하지 못하고 영화는 감독이 분비한 물기로 가득하다.
 한편 이 영화는 여러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초반의 집 느낌은 <4월이야기>(이와이 슈운지)와 비슷하며 손예진(지혜)이 책더미를 힘겹게 나르는 장면은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츠키를 떠오르게 한다. 또 러브레터를 대신 써달라는 준하(조승우)의 친구 태수(이기우)의 기이한 행동들 역시 <러브레터>에서 중학생 후지이 이츠키의 도끼빗 친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우산이 등장하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 씬은 <번지점프를 하다>와 같다. 뭐 사랑을 그리는 멜로영화가 서로 비슷한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클래식>은 기존 작품에 있던 설정이나 떠돌아다니는 연애 코드를 색다른 변주 없이 차용했다. 거기엔 새로움이 적게 묻어있었기에 더러는 진부했다. 신발을 바꿔 신는 것이나, 지하철에서 뺨때리기 놀이를 하는 신선함으로 가득했던 <엽기적인 그녀>가 그립게 떠올라서 하는 말이다.
손예진은 이제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다. 망가지는 모습(그녀의 막춤은 '내가 찾는 아이송'에 이어 꽤나 충격적이다. 분명 모두들 한번씩 따라해 볼걸? 나도 벌써 여러 번 해봤다.)이나 닭살스런 행동 모두 거북스럽지 않고 귀여우니, 그녀는 멜로의 공주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언제까지 이 병약한 캐릭터를 맡을 것이냔 것이다. 조승우 또한 멜로의 왕자는 물론 여러 쟝르에서 플레이가 가능한 배우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조인성이다. 심각한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포개지지 않은 채로 심각하게 연기하니, 좀 깬다. 조금 더 영화 매체 연기가 필요하겠다.
힘든 현실을 잊고싶어서일까? <몽정기>며 <품행제로>며 여기에 <클래식>까지, 한국영화에 온통 클래식 바람이 불고 있으니 말이다. 지나친 노스텔지아는 안 좋다. 현실 개혁 의지가 있어야 미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구어 논 현실은 분명 추억하고픈 과거가 될 것이다. <클래식>을 보니, 이젠 과거에 젖게 만드는 영화가 좀 지겨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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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열
*취미-비디오 테잎 모으기, 영화일기 쓰기
*해보고 싶은 역할-엑파의 멀더
*내 인생의 영화-수자쿠
*이상형-스컬리+강철천사 쿠루미
*좋아하는 배우-소피마르소, 줄리 델피, 전지현, 조재현, 김유미
*감독-이와이 슈운지, 장선우, 에밀쿠스트리차, 키에슬롭스키, 기타노다케시
*싫어하는 것-아프다는 말, 로빈윌리암스 출연 영화, 가루약, 교복이 어색한 꼬질꼬질한 여중생, 스페이스 A의 루루, 양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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