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디스퓨티드> 결국은 판정패

리뷰

<언디스퓨티드> 결국은 판정패 :::

윤현호 | 2003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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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전 68승, 지난 10년 동안 한번도 져 본적이 없는 무적 복서 허친(웨슬리 스나입스). 헌데 이 친구, 좀 특이한 경력의 챔피언입니다. 공식 선수가 아니라 감옥에서 비밀리에 벌어지는 권투 경기의 최강자거든요. 비록 비공식이지만 허친은 죄수들이 인정하는 'Undisputed'(무적자)입니다.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없을 즈음에 허친과 겨루어도 손색없는 도전자가 나타납니다. 현 헤비급 세계 챔피언인 아이스맨(빙 레임스)이 성추행 혐의로 감옥에 들어왔거든요. 그야말로 최고의 빅매치가 열리려는 찰나입니다.

1. 감옥에서 범죄자들이 싸우는, 죽을 때까지

"권투 영화를 찍어 볼까 합니다"
"다른 게 뭐지?"
"경기장에 하는게 아니라 감옥에서 범죄자들이 싸우죠. 죽을 때까지.."

<언디스퓨티드>를 만들기로 결정한 사무실에서 오고갔을 법한 대화입니다. 끼어들 틈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권투 영화 포맷을 <언디스퓨티드>는 용케 비집고 들어갑니다. 감옥이라는 장소와 범죄자들이라는 캐릭터를 차별했기 때문이죠. 권투는 실제로 보이는 것과 달리 룰에 얽매여서 뻣뻣한 경기를 하게 마련인데, 이걸 방지하기 위해 '런던 경기 규칙'이라는 방식도 도입했군요. 심판 없이 한사람이 쓰러 질 때까지 경기하는 방식이죠.

무대를 사각의 링이 아니라 철장으로 둘러싸인 감옥으로 끌고 온 건 탁월한 선택입니다. 인간이 가지고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폭력성으로 들끓는 집단이 모여 있으며 강제적인 규범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이죠. 권투 경기의 속성과 잘 어울립니다. 스포츠 경기 중에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통제가 많은 경기가 권투이니까요. 이렇게 포인트를 잘 골라내서 시작한 영화들은 재료만 잘 요리해도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관건은 조리법이겠지만요.

2. 판정패 당하다.

문제는 <언디스퓨티드>가 재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두 가지는 '권투 경기'와 '감옥'이라는 독특한 장소입니다. 두 가지 요소는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영화는 종종 권투에만 집중을 하고 말아요.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건 단순한 권투 영화가 아니라 '감옥에서' 벌어지는 권투 영화인걸 망각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마지막 경기 장면은 이런 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입니다. 심판 없이 한사람이 쓰러질때까지 싸운다는 런던 경기 규칙을 도입했는데도 별다른 미장센을 보여주지 못해요. '감옥'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건 간간이 보이는 철장과 열광하는 죄수들뿐입니다. 경기 내용을 통해 어두컴컴한 감옥을 감지할 순 없어요. 따라서 <언디스퓨티드>는 순회 경기의 하나로서 단지 감옥으로 갔을 뿐 처음부터 감옥에 시작한 느낌을 살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권투 영화와 차별되지 못하고 애초의 기획 의도가 무의미해지고 말았어요.

또한, 권투 영화치고도 빈곤한 액션씬을 보여준다는 점도 문제가 있어요. 후반부의 권투 장면을 보기 위해선 그때까지 관객들은 두손 놓고 선수들의 트레이닝 과정을 지켜봐야 합니다. 중간에 대체되는 액션 장면 없이 마지막에 터트릴 한방만을 위해 기다리라고 하는 건 관객의 집중력을 가볍게 본 발상이죠. 금방 지쳐서 관심을 꺼 버리는 관객들에게 <언디스퓨티드>는 액션의 밀도가 너무 헐겁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빙 레임스가 스턴트 없이 맨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볼거리입니다. 배우들의 액션 연기도 손색 없었고요. 하지만 수십 개씩 볼거리를 줄줄이 달아 놓고 순차로 터트리는 액션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언디스튜티드>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TIP

●● <밴디츠>처럼 이 영화도 엑스트라의 대부분을 실제 죄수를 기용했다고 합니다. 가쉽거리는 이용될 만은 한데, 너무 위험부담이 크지 않나요?

●●성추행으로 감옥에 들어간 아이스맨은 어느 누가 봐도 타이슨을 조롱하는 캐릭터로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