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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2 리로디드> 매트릭스를 위한 변명 :::

신주희 | 2003년 06월 23일 조회 3400
객 : 이미 개봉한지 꽤 되었고 이에 따른 글도 만만치 않게 올라온 지금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 대하여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주 : 저의 특징이라면 개봉영화 늦게 보기인지라 겨우 어제 보고 몇 가지 추슬러보고자 나왔습니다. 그동안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 오락가락했던 것도 한 이유고요.
객 : 그럼 간단히 가도록하지요.
주 : 저는 이 영화가 크게 윤회와 결정론적 운명론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1편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전편의 전복도 거론할 수 있겠으나 이건 현각스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더군요.
객 : 그건 마치 “현각스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웃음)
주 : 우리가 매트릭스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이겠죠. (웃음)
객 : 윤회라는 것은 네오가 매트릭스의 최종 프로그래머(Architect)를 만났을 때 들은 말, 그러니까 네오가 오기 전에 5명의 사람이 왔었다는 것을 가지고 추론하신 거겠죠?
주 : 그렇죠. 불교에서는 세계를 천상계, 인간계, 축생계로 나누고 인간은 ‘업’으로 인하여 인간계와 축생계를 오고간다고 하죠. 이것이 윤회이며 ‘업’이 소멸될 때 해탈하는데 네오는 아직 천상계에 갈 때는 안되었나 봅니다. (웃음) 다만 여섯 번째 태어난 격이죠. 하지만 아직 업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할 수도 있겠고.
객 : 그렇다면 네오의 삶은 원죄에 의하여 어느 정도 결정되었군요.
주 : 그것이 꼭 네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상징으로 봅시다. 1편에서 네오는 모피어스가 내민 두 알약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건 선택이었죠. 네오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역할은 무엇인지 모르며 매번 망설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선택’은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선택은 둘 중 하나이기에 그것을 추측하는 데에는 50%의 확률이 있죠. 이것을 어떻게, 먼저 말하고 나중에 말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한 결정은 이미 예상할 수 있고 그 과정이 조금 복잡할 따름입니다. 분명 자신은 의지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하겠지만 영화에서는 이것들이 오래전에 결정되었다고 말하죠. 한편으로는 인과율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객 : 아니, 그보다는 인과율의 생략 같은데요. 그리고 그것을 걷어내어 버리면 보다 단호하게 우리는 정해져있는 세계관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기가 편할 것 같습니다만.
주 : 운명론을 조금 수정했다고 볼 수 있겠죠. 어쨌든 이로서 1편의 믿음은 사라집니다. 영화 내내 모피어스는 모두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지만 정작 키메이커를 통해 메트릭스 내부에 들어가면 전쟁이 끝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자 스스로를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1편부터 쌓아올린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 오고, 이런 상황만으로도 [리로리드]는 전복적이죠. 모피어스의 믿음이 흔들리고 예언자인 오라클 또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밝히면서 그이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The One'이라 생각했던 네오의 유일함도, 트리니티의 사랑도 잠시, 시온주민에 대한 믿음도 후반부 함대 격파로 인하여 의혹 받게 됩니다. 때문에 연작으로 된 영화란 새로운 편수가 추가될수록 여기에 자리 잡은 세계관을 보다 확고하게 쌓아올리거나 그냥 방치해 둔 채로 인물의 개인기에 치중하기 마련인데 [매트릭스]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가치가 있습니다. 네오가 알약을 먹고 매트릭스 세계에서 나온 것도 역시 매트릭스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는 동시에 계산된 프로그램의 시행착오라고 공언하기도 하죠. 물론 이것의 진위는 아직 속단할 수 없습니다만 현재까지 본다면 1편에 대한 반증이 2편에서 펼쳐진다면 3편은 그것들의 합이라는 ‘정-반-합’의 큰 테를 형성하리라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2편이 끝나면서 “다음 편에 계속(to be continued)"이 아닌 ”다음 편에 결말(to be concluded)“이라고 밝히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죠.
객 : 농담입니다만 어쩌면 틀 안에 또 다른 틀이 겹겹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군요. 가령 매트릭스 속의 매트릭스, 또 그 속에 있는 매트릭스, 매트릭스, 매트릭스... 그리고 이 모두가 모여 커다란 매트릭스를 이룬다는 식으로. 혹자는 ‘매트릭스’를 ‘행렬’로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말하던데요.
주 :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무튼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네오는 매트릭스 밖,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매트릭스 세계에서처럼 떼거지로 밀려오는 센티널을 멈추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이것 또한 예정된 프로그램의 시행착오라고 생각하십니까?
객 : 글쎄요. 하지만 반대로 현실세계에서 네오의 능력도 예정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3편은 ‘합’이 아닌 또 다른 ‘반’이 될 것 같은데요. 아울러 현실세계에서 네오가 매트릭스에서처럼 능력을 갖게 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세계 또한 실은 매트릭스였다는 반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 : 만약 네오의 능력이 예상치 못한 것이라면 그 반대일수도 있고요. 아니면 네오도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즉,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처럼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는 리플리컨트가 네오란 식입니다. 매트릭스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추구하는, 프로그램과 인간을 뒤섞여버리면서. 그러나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다”라는 존재성은 단편영화에서도 흔히 쓰는 주제라 이렇게 끝맺을 것 같지는 않네요.
객 : 시온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온전한 인간세계를 만들지만 정작 그 승리를 이끈 네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초창기 구상한 [A.I]의 내용이 이렇지 않았던가요? 만약 그렇다면 인간세계가 승리의 환호를 울릴 때 지하에서는 또 다른 레지스탕스가 조성되겠군요. 그들은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인간에게 억눌려있다고 생각하면서.
주 : 그렇다면 인간이든 기계든 존재는 중요하지 않아지죠. 당위성이 앞서면서.
객 : 나비가 되는 꿈을 꾼 줄 알았는데 나비의 꿈이 나였다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의 결말은 식상해서 말입니다. 하여간 이쯤에서 3편을 예상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겠네요.
* 평론가 김윤식님이 쓰인 김훈의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 대한 서평형식을 차용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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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주희 Chasing Age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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