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승> 폼만 잔뜩 세운 선문답 액션

리뷰

<방탄승> 폼만 잔뜩 세운 선문답 액션 :::

윤현호 | 2003년 09월 29일
조회 3092

(아주 사소한 스포일러가 공개됩니다만... )

무영승(주윤발)에겐 60년간이나 지속 된 임무가 있습니다. 일급 비기가 담겨 있는 두루마리를 지키는 일인데, 단지 읽는 것만으로 불사와 절대무공을 얻을 수 있죠. 당연히 두루마리를 노리는 악당이 있겠죠? 60년 넘게 도망 다닌(?) 무명승은 이제 임무를 넘겨줄 제자를 물색하려 합니다. 헌데, 무명승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그가 택한 제자는 3류 소매치기 카(숀 윌리암 스코트). <아메리칸 파이>에선 정액 쥬스를 마시고 <내차 봤냐?>에선 온통 바보스런 짓만 골라서 그 배우가 아닌가요? 무명승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겠군요. ㅡㅡ

'폼'만 잔뜩 세운 선문답 액션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두루마리를 얻게 된 악당.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펼쳐 봤는데, 적혀 있는 건 고작 스프 제조법이었습니다. 두루마리는 그냥 폼이었던 거예요. 악당이 느꼈을 '속은 기분',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방탄승>을 열어 본 관객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동병상련을 느끼고 말테니까요.

영화는 오우삼과 주윤발이라는 미끼를 던져서 관객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주유발의 쌍권총 액션을 강조한 광고 클립마저 이들의 홍콩 시절 '콤비 플레이'를 자극하고 있죠. 하지만 <리플레이스먼트 킬러>가 그랬듯 오우삼은 멀찌감치 뒤에 서있습니다. <방탄승>에서 그는 연출자 마인드가 아닌 주윤발의 매니저 정도에 불과합니다. '주윤발스럽게' 만드는 몇몇 테크닉을 지도해 주는 게 고작이죠. 덕분에 소모 되는 건 주윤발입니다. 게다가 영화는 주윤발의 기존 이미지조차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있어요. 왜 와이어에 묶인 주윤발을 관객들이 보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영화는 흡사 아비규환의 응급실을 연상시킵니다. <방탄승>이란 응급실에는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이야기와 수혈이 시급한 플롯들로 가득합니다. 이 비극적인 공간엔 그나마 제때 치료해 줄 닥터 한 명 보이지 않네요.

카의 로맨스 상대인 제이드(제이미 킹)가 왜 러시아 마피아의 딸로 설정되어야하는 지 납득되지 않아요. 마피아의 후광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이런 설정 역시 그저 '폼'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가 무명승의 제자로 낙점되는 장면역시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냅니다. 지하철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한건 물론 영웅적인 행동입니다만,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당이 등장하는 마당이라면, 좀더 포장된 상황이 어울렸을 거 에요. 오히려 이럴 때 폼을 세웠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아무런 가르침도 주지 않고 깨달음만 요구하는 스승, 배운 것도 없는데 영화 끝나기 직전 '별안간 득도'를 하는 제자. '폼'에만 관심있는 영화는 단지 장식장에 전시할 목적으로 '동양사상'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잘못 놓여진 장식품 하나가 장식장 전체의 미적 감각을 파괴한다는 걸 몰랐을까요?

<방탄승>은 영화 자체가 선문답입니다. 통한 사람들만이 이해한다는 선문답이 액션 장르에서도 먹힐지 의심스럽지만, 깨달음이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저로선 해석이 안 되는 영화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