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식으로 날리는 360도 발차기에 솥뚜껑을 부메랑처럼 던지는 간첩이 등장하지만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출발점은 놀랍게도 실화다. 한양대 앞 ‘롯데리아 걸’로 급기야 연예계까지 데뷔한 남상미의 성공 스토리를 빌려왔는데 이 실화는 이전까지 무명데뷔의 단골메뉴였던 길거리 캐스팅을 단번에 제압정도로 극적이었다.
하지만 다큐가 아닌 이상 얼짱 신드롬 하나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법. 영화는 실화에 픽션을 계속 덧입히면서 두 시간짜리 내러티브를 완성해 간다. 버거걸(영화에선 롯데리아가 아니라 버거킹임.)을 좋아하는 삼수생이 등장하고 남파 간첩 스토리에 코믹, 멜로 영화들의 익숙한 플롯들이 이식된다. 껴입은 옷이 점차 두꺼워지면서 스포츠지의 가쉽 코너를 장식했던 이야기가 실종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걸까?
코미디도 멜로도 아무것도 몰라.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음모이론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얼짱이 실은 간첩이라는 상황은 우리의 인식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음모(?)를 제공한다. 따라서 영화가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지점은 이곳. 2003년 최고의 검색어였던 얼짱과 단어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분신인 간첩을 연관시킨 건 일견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문제는 ‘얼짱이 실은 간첩이었다’라는 한 줄짜리 아이디어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인데...
영화는 코믹과 멜로라는 정서를 통해 소재를 풀어나간다. <엽기적인 그녀>를 추종이라도 하려는 듯 전반전(코믹)과 후반전(멜로)으로 정서를 나누고 중요한 정보는 등장인물의 나레이션을 통해 제공된다. 일반적으로 멜로 정서는 여주인공을 통해 전달되지만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고봉(공유)를 이용한다. 모든 캐릭터들이 과장된 행동으로 웃음을 갈구하지만 고봉이만은 절제의 미덕을 고수한다. 간첩이 순식간에 얼짱으로 신문에 나고 또 다른 간첩은 다단계에 빠져 공작금을 날려먹는 난리 속에서도 고봉이는 어떤 과장된 상황도 임무도 부여받지 않는다. 그것은 후반 멜로 모드를 위한 포석이기 때문.
문제는 코믹 모드가 전혀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후반전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멜로를 위한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 몇몇 상투적인 장면으로 고봉과 계순(김정화)의 사랑을 강요하고 어떤 동의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서둘러 사랑의 결실을 맺으려 한다. 하지만 어디 멜로 감정이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성질이던가? 전반부의 전혀 웃기지 않은 코미디 전략보다 훨씬 치명적이라 중반 이후 이미 벼락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구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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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모르면 간첩> 코믹도 멜로도 아무것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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