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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


여임동 | 2000년 02월 01일
조회 1690


감독 : 이마무라 쇼헤이

이 마을은 마치 `원시 공동체' 사회를 보는 듯 하다. `생계 유지'는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성관계 장면 (말그대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존재하는) 처럼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것이며, 이 본능을 바탕으로 그것은 마을을 유지하는 `관습' 그리고 `법'으로 적용된다. (나라야마라는 곳이 지칭하듯, `신화'로서도 적용된다)

그래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 즉 생산된 `식량' (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인간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재편된다. 인구수의 조절을 위해 갓 태어난 남자 아이들은 논밭에 버려지고, 여자 아이들은 내다 팔리며, 고령의 노인들은 소위 고려장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산에 버려진다. 적절한 인구수의 조절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기 때문이다.(여자를 딴 마을에서 데려오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 그런 점에서 이 마을은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여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생각해 볼 지점!)

하지만 혹시나 철저하게 유교사회에 훈육된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이 마을이 인륜이 파괴 되있거나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무법천지는 아닌 듯 싶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의 현실과 이 `원시 공동체'는 `어떻게' 생산하고, 그 생산된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하고, 그 생산된 `물질'을 통해 사회가 조직된다는 기본적 측면에서는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맑스가 말한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달라진 환경에 적응 하면서 만들어낸 사회구조와 관념의 차이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마치 미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 같다는 현실 관객의 표면적 관찰은 전혀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배반당한다. 오히려 그들의 순박함에 절로 웃음이 나오기 마련이며, 이 순박한(현실관객의 고정관념에 반대된다는 측면에서 - 순박하다는 표현보다는 현실의 논리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사람들은 영화 곳곳에서 현실 사회에선 이미 잊혀지고 의미가 축소되고 있는 <노동>과 <생산>에 대한 찬가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최고 미덕 아닌가 싶다)

그런 찬가의 모습들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죄인 경제구조를 교란시킨 도둑가족(?)이 생매장으로 몰살 당하는 장면에서, 이상하게도 흙을 파 묻는 마을 사람들의 살해 모습이 열심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쳐질 때, 빈번히 등장하는 섹스씬이 항상 동물의 교접장면과 비교되면서 생산을 위한 노동으로 비쳐질 때,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할머니의 지도를 통해 처음으로 물고기를 잡아내는 며느리의 모습이 마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받는 듯한 노동의 결과물로 비쳐질 때처럼 그렇게 <이미지화>되어 보여진다.

하지만 노동과 생산의 찬가만이 다는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사람들이 <꿈꾸기>를 (꿈이란 또 얼마나 생산적인 노동행위인가) 바라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버려지는 (하지만 그들은 신(神)을 만난다고 굳게 믿는) 나라야마는 <노동>과 <생산>이 연결되는 원형 고리의 지점이다. 그 지점은 `꿈'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다. 그래서 꿈은 기독교의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일하는 고통과 출산하는 고통을 안겨 주었듯이, 어쩔 수 없이 파생하는, 항상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반복되는 현실 고통을 인간 `스스로' 해소하도록 만든 방책일 것이다. 소원이 이루어진 꿈처럼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든 <눈>같이....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현실의 관객의 입장에서) 아주 섬뜩한 진실을 드러내는 `인류학 보고서' 이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의 유사함은 우리를 진저리치게 만들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것을 삶의 (노동과 생산 그리고 꿈) 원동력으로 삼는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일 것이다. 현실은 <회피>하는 것이 아닌 <끌어 안는 것>이라고 영화 <우나기>에서 가르쳐 준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충고는 그런 점에서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거꾸로 들어오긴 했지만)

미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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