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전트빌>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리뷰

<플레전트빌>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김성신 | 2000년 10월 10일
조회 1591

이야기..

마법같은 색깔마을 플레젠트 빌

데이빗(토비 맥과이어)은 TV 시트콤 [플레전트 빌]의 매니아이다. TV리모콘을 두고 쌍둥이 누이 제니퍼(리즈 위더스푼)와 다투다 리모콘을 망가뜨리게 되고, 느닷없이 나타난 수리공 할아버지에게 받은 리모콘은 이 둘을 TV 속 '플레전트 빌'로 안내한다. 흑백 TV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버린 둘은 당황해하지만, 별 수 없이 적응하며 지내게 된다.

항상 '유쾌'하기만 한 이 '플레전트빌'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데이빗은 나름대로 잘 지내지만, 괄괄한 제니퍼는 이 '유쾌한 마을'이 불쾌하기만 하다. 불이라곤 구경도 못해서 불을 끌 줄도 모르는 소방관들, 실수란 전혀 없고, 항상 풍족하며, 365일 쾌청하기만 한 날씨, 게다가 '사랑할' 줄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 제니퍼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사랑과 섹스를 가르친다. 제니퍼로 인해 퍼진 변화의 물결은 흑백 세상이 하나 둘씩 色을 띠게 만들고...

데이빗은 이 곳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제니퍼를 말리려 하지만, 결국엔 자신도 이 변화에 동참하게 된다.

천국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만드는 것..

'플레전트 빌'. 말 그대로 유쾌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하도 유쾌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니,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여자에게 말 걸 용기조차 없는 소심하고 의기소침한 데이빗. 그와 반대로 너무나 활기차 불량소녀(!)에 가까운 그의 쌍둥이 누이 제니퍼. 부모의 이혼이란 어두운 가정 상황 안에 이들의 낙은 촌스런 시트콤보기와, 데이트하기이다.

느닷없는 TV로의 여행.. 다소 진부한 상상력의 부산물이 아닐지..

스필버그사단 식의 가족 오락물에 가까운 소재인지라, 그리 반갑진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은 그다지 나쁘진 않다.

불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않아, 소방관은 'fire!'란 말보다 'cat!'이란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치 TV 소품인 것처럼 겉 표지만 있고 내용은 없는 책들은, 데이빗과 제니퍼가 기억하는 내에서만 내용이 생겨난다. 그러한 개체들이 모아져, 제니퍼에 의해 '사랑' 이란 불씨가 생기자 마자 강력한 휘발성으로 순식간에 변화를 맞게 된다.

질서정연의 미덕으로 똘똘 뭉친 '플레전트 빌'이 부닥뜨린 위기는 '변화'이다. 항상, 변함없이 풍족함을 자랑하던 '플레전트 빌'도 없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사랑'과 '색깔'이었다. 우연인지 우리가 쓰는 色이란 한자도 비슷하게 쓰이고 있지 않은가..(더 육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사랑와 색은 통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듯 나타나는 '사랑'은 플레전트 빌의 칙칙한 흑백 세상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색깔'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마다, 감정을 가질 때마다 색깔은 하나씩 늘어만간다. 그런데, 모든 사물이 제 색을 찾은 때의 플레전트 빌을 보면, 왠지 실망감이 생긴다. 모든 색을 다 찾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 허전하다. 흑백이 칼라가 된다한들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흑백에서의 몇 안 되는 색깔이 빛을 발했지만 칼라가 됐을 땐 그 색 자체를 아름답다 느끼기 어렵다. 플레전트 빌은 다시 제자리로 온 느낌이다. 영화가 끝나고 플레전트 빌은 또다시 파라다이스가 되었겠지만 다시금 변화할 것이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바뀌고 또 바뀔 것이다. 사람처럼 불완전한 존재가 없다고 들 한다. 들짐승처럼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생리는 '변화'이다. 변화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한다. 만약 현재 상태로도 만족할 수 있다면 사람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하고픈 욕구로 인해 변화하고, 변화된 모습에서 다시 욕구를 느낀다. 이는 '플레전트 빌'에서 욕구가 변화를 일으켰듯 사람의 완전하고픈 욕망이 원동력이 되어 변화하는 것과 같다. 즉 '플레전트 빌'은 사람의 구조와 같다.

'플레전트 빌'의 생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데이빗. 그는 제 세상을 만난 듯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불평만 하던 제니퍼가 오히려 즐겁게 지내게 된다. 수동적인 인간형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손으로 인한 변화가 더욱 재미있다. 데이빗은 변하지 않는 이 세계가 지루하게 되고 자신도 변화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제니퍼가 종국엔 '플레전트 빌'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안경을 쓰고, 대학을 가고... 저 바깥 세상에서의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변화시킨 곳 안에서 자기자신도 변화해갔던 것이다. 잘 적응할 것이라 여겨졌던 데이빗은 돌아오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니퍼가 남아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동안에 있을 이해못할 불가항력의 힘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언제나 우리 뜻대로만, 예상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만큼 재미있고 아슬아슬하다. 이것 또한 삶에 있어서의 미묘한 변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다름 아닌 빅과 데이브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게리 로스이다. 그의 영화들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 그의 영화 중에 이 '플레전트빌'은 그 중에도 가장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에게 잘 전달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특수 효과 때문이다. 1700개나 쓰여졌다는 이 영화에서의 효과들은 실로, ‘특수 효과란 이런 때 쓰는 것' 이란 생각이 들게끔 영화와 잘 어울어진다. 99년 아카데미에 시각효과상, 의상상, 음악상 3개부분 노미네이트 되었다 한다. 비록 노미네이트에 그쳤지만, '플레전트 빌'은 색채 감각에 대해, 그 놀라운 생각에 대해 다시금 기억되는 영화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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