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리뷰

<디 아워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곽은주 | 2003년 0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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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는 내가 다시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우리가 또다시 그러한 지독한 시간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다시 건강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이었을 겁니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두 사람도 우리들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중 일부로 영화 오프닝 장면에 소개됨

여기, 세 여자가 있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만), 1951년 미국 LA의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2001년 미국 뉴욕의 클라리사 보건(메릴 스트립). 각기 다른 시간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세 여자, 울프, 로라, 클라리사는 6월의 아름다운 햇살아래 하루를 시작한다. 그 세 여자의 아침에서 밤까지 단 하루동안의 일상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영화는 한 틀 안에서 직조된다.

영화 <디 아워스>는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 The Hours'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소설 `The Hours'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내용을 골격으로 실제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허구의 두 여자의 삶이 교차되며 그려진 수작. 1999년 소설가 최고의 영예인 펜 포크너상과 퓰리처상을 받았다. `세월'이란 제목으로 국내 출간됐다.
소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의 문제들로 번민하는 세 여자의 하루의 여정을 의식의 흐름을 타고 담담하게 담고 있는데, 영화는 원작의 섬세한 감정을 흐트리지 않고 잘 살려냈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버지니아 울프는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 생각에 식음을 전폐하고 창작에 몰두하며 극도의 신경쇠약 증상을 보인다. 니콜 키드만은 버지니아 울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메부리코를 붙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고뇌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열연한다. 전작 영화 <디 아더스>, <물랑루즈>에서의 고혹적인 키드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왼손잡이인 키드만은 버지니아 울프의 집필 장면을 위해 수 개월간 오른손 쓰는 법을 훈련 했다고 한다. 이 역으로 키드만은 올해 골드그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51년 미국 LA,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푹 빠져 사는 로라. 둘째를 임신중인 그녀는 세살박이 아들-리차드(클라리사의 애인)와 남편의 생일 케익을 만들던중 소설속 주인공처럼 자살을 계획하나 결국 포기하고 둘째 출산후 가출한다. 줄리안 무어는 실제 임신 8개월인 몸으로 출연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로라역을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2001년 미국 뉴욕, 애인 리차드가 붙여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인 클라리사는 리차드(로라의 아들. 에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 준비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 리차드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다. 동성애인과 동거하면서도 남성에 종속되게 그려진 클라리사의 삶은 갑갑하다. 갑갑한 현실을 살아가는 클라리사의 불안한 내면의 풍경은 메릴 스트립의 눈빛에, 손끝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울프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처럼 영화속 세 여자의 일상에는 항상 꽃이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들에 기쁨, 희망, 즐거움, 슬픔의 한 표현으로 형형색색의 꽃이 의미있게 연출된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나.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물음이지만 산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진부한 몸짓이 아닐까.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삶의 일상성, 상투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죽음조차 삶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영화를 흐르는 필립 글라스의 반복적인 주제음악의 변주는 다른 배경을 갖은 세 여자의 의식의 흐름을 인생이라는 하나의 명제로 이어주는 아름다운 윤활유가 된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로 2000년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등 3개 부문을 석권한 스티븐 달드리. <디 아워스>로 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삶은 불행했다. 20대 초부터 신경 쇠약증으로 고생하다 59세에 우즈 강에 투신하여 생을 마친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해에 죽었다. 제임스 조이스를 현대 문학의 아버지, 버지니아 울프를 현대 문학의 어머니로 일컸는데, 두 소설가는 `사건의 연속성'에 치중하는 이전의 소설과는 다르게 `의식의 흐름'이라는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를 묘사했다. 하여 그들의 소설은 무척 난해하고 복잡하여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장편 [항해],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 [세월], [파도]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원전인 [자기만의 방]이 있다. 그녀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불행은 도처에 있다. 바로 문밖에. 아니면 어리석음이. 그것은 더 나쁜 것이지.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나의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다'...1920년 10월 25일 일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