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 도시를 지키기엔 너무 허약한 영웅

리뷰

<데어데블> 도시를 지키기엔 너무 허약한 영웅 :::

윤현호 | 2003년 03월 20일
조회 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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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이 우글거리는 도시, 뉴욕 헬스키친의 낮과 밤에는 영웅 두명이 있습니다. 돈 없고 빽없고 거기다 억울하기까지한 서민들의 민권 변호사 머독(벤 애플렉)과 미처 법이 가려 주지 못한 얌체 악당들을 처리해 주는 데어데블이 그들이죠. 굳이 두명이 동일인 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죠? ^^ 머독은 방사능 폐기물 때문에 시력을 잃었지만 대신 눈 이외의 모든 감각들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슈퍼 히어로가 된 머독은 아버지를 죽인 범죄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 정의를 지키기 위해 헬스키친의 밤거리를 어슬렁거립니다.

1. 정의보다는 가죽옷 디자인이 중요해.

또 한 명의 슈퍼 히어로 신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상품은 수년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개발한 신상품은 아닙니다. 이미 인기를 끌었던 기존 제품들의 장점- 세상에나 단점까지도!!-들을 취합해서 뽑아 낸 가공품이죠. 고담시에 고용된 <배트맨> 견본이 가장 대폭적으로 참고된 것 같군요. 낮과 밤을 결벽적으로 구분해서 활동한다는 점이나 - 도대체 누가 모든 범죄는 밤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했을까요? ㅡㅡ-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그보단 복수심과 증오심을 폭력으로 발산한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거기다 모든 복장, 무기, 조명에 박쥐 마크를 새기는 상업적 수완을 <데어데블> 주인공도 본받고 있습니다. 보이시죠? 두 개의 대문자 D가 새겨진 가죽옷과 지팡이가... ㅡㅡ

슈퍼 히어로가 활약하는 영화들은 가공된 이미지들로 가득합니다.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니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도 그럴수밖에요. 무엇보다 그들은 쇼맨쉽이 너무 지나칩니다. 종종 정의를 수호하는 임무보다는 어떤 가죽옷을 입고, 어떤 이니셜을 광고할까에 더 고심하는 것 같을 정도죠. '수퍼맨'이니 '배트맨' '스파이더맨' 하는 한 발음으로 명쾌하게 표현하는 닉네임들 역시 가쉽거리 기사에 목말라 하는 저널에서나 반기는 기호들이죠. 만약 그들이 세계 정의 구현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어떤 슈트의 옷을 입고, 복장을 어떤 색깔로 디자인하고 자동차에 박쥐 마크를 붙이고 다닐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은 단지 능력만 초인인인게 아니라 뽐내고 싶어하는 과시 욕도 초인입니다.

물론,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고, 관객들은 자신들이 응원할 히어로에게 조금이라도 볼거리가 많기를 기대합니다. 문제는 <데어데블>의 어설픈 쇼맨쉽은 너무 뻔하게 들여다보인다는 거예요. 단지 주인공 캐릭터의 한 명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고요. 표적 적중에 결벽적인 불스아이(콜린 파렐)와 범죄 현장에 언제나 빨간 장미를 자랑스럽게(?) 남겨 두는 킹핀(마이클 클라크 던컨), '내 가슴좀 보세요!'하는 복장을 순순히 입고 나온 일렉트라(제니퍼 가너) 등등... 도대체 이 영화는 브라운관에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들이밀려는 초짜들의 알력 싸움을 보는 것 같단 말이죠.

데어데블을 죽이기 위해 수련을 하는 일텍트라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그 수많은 모래주머니를 천장에 달아 놓을 정성이면 이미 복수를 하고도 남을일이예요. 거기다 주머니에 일일이 데어데블의 이니셜을 적어 놓는 쓸데없는 세심함이란...ㅡㅡ <데어데블>은 상당히 자주 관객들이 용인해 줄 아량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기본적 드라마의 개연성이 망가지던 말든 영화는 폼나는 그림만 찾아대고 있습니다.

2. 체력 단련이 필요한 주인공.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아주 치명적인데, 데어데블은 그다지 잘 싸우는 것 같지 않단 말이죠. 초인적인 능력도 없이 단지 돈 많은 사업가뿐인 배트맨 조차도 수많은 무기들에 의지해서 잘 싸워 내는 것에 비한다면 데어데블은 하늘이 주신 능력이 아까울 지경입니다.

본격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클럽 액션 장면의 경우, 데어데블의 초인적인 능력을 부각시키지 못했습니다. 총알 피하는데 급급하느라 발레 동작만 반복할 뿐, 정작 악당을 제압하는 과정의 발과 주먹의 물리적 액션이 빈곤합니다. 거기다 후반부 액션 신에서 쩔쩔매는 데어데블의 모습은 주인공 자체를 실종시켜 버릴 만 해요. 과연 <데어데블>이라는 영화에서 누가 제일 쎈거야? 라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게 만들 정도죠. 오히려 순수하게 무술 유단자인 일렉트라가 데어데블보다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ㅡㅡ

<데어데블>은 후속 편이 분명하게 예정된 프랜차이즈입니다. 하지만 장난감 하나라도 더 팔려는 뻔한 수작이 다시 보인다거나, 허약한 주인공을 좀더 체력 단련시키지 않는다면 시리즈의 비참한 최후가 그리 멀지는 않을 거예요. <★★★>

TIP

●●애초 데어데블 역을 거론된 배우는 에드워드 노튼과 가이 피어스였습니다. 불스아이역은 빈 디젤이었고요. 빈 디젤이 불스아이같은 멍청한 역할을 안한게 천만 다행입니다. ㅡㅡ

●●케빈 스미스(껄렁거리며 부검하던 의사), 스탠 리(횡단보도 건너려던 신문 든 할아버지)가 까메오 출연합니다. 이들 모두 <데어데블> 원작에 중요한 사람들이죠.

●●킹핀은 <스파이더맨> 이야기의 주요 악당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두 영화 모두 스탠 리가 그렸으니까요. ^^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다 말고 병원에 실려 있는 불스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거보고 든 생각 '이쯤 하면 막 하자는 이야긴가? ㅡㅡ'

●●<와호장룡> <매트릭스>의 무술감독인 원화평의 동생 원상인이 무술 지도를 했군요. 그래서 '와호장룡' 스러운 액션 안무가 느껴졌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