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는 딱 두 부류의 인간들이 있습니다. 가쉽거리만 찾아다니는 기자들과 스스로 가쉽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배우들(물론 변호사도 포함해서). 록시(르네 젤위거)는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헌신적인 남편을 배신하고도 남을 여인입니다. 아.. 실제로도 그랬고요. 하지만 세상이 어디 호락하답니까? 무대에 줄을 대주겠다던 유력인사가 실제로는 별볼일없는 가구 외판원이었던 거예요. <시카고>는 록시가 살인을 저지르면서 법정으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시카고 최초의 사형수가 되느냐? 동정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무죄를 얻어내느냐? 의 기로에 선건데... 글쎄요. 시카고 시민들은 록시가 어찌되느냐 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단지 록시가 보여주는 '법정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문제는 록시와 쇼맨십으로 똘똘 뭉친 변호사 빌리(리차드 기어)조차도 쇼를 즐긴다는 사실이에요. 좀전의 질문을 다시 수정해야 겠군요. 록시가 보여주는 법정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 라고.
1. 번거로운 사용 설명서
뮤지컬에서 중요한 두 가지는 음악과 춤입니다. 그리고나서야 줄거리죠. 이야기의 역할은 노래와 춤을 최대한 돋보이게 만드는 일입니다. 갑자기 배경음악을 주인공들이 따라 부르고, 엑스트라들까지 가세하는 장면처럼 종종 내러티브는 현실성을 파괴당합니다. 일종의 관습이죠. 뮤지컬 영화의 '음악적 장면 전개' 방식은 장르의 특징을 보여주는 관습이며 관객들은 그 순간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뮤지컬 영화를 보는 요령이죠. 사용 설명서 같은 셈인데, 설명되어 있는 방식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불분율입니다. 설명서에 동의하지 않거나 이해를 못했을 때,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되는 거예요.
<시카고>는 좀 까다로운 매뉴얼을 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극영화 장면과 뮤지컬 장면이 분리되어 있는 것에 반해, <시카고>는 경계를 나누지 않아요. 록시의 살인이 밝혀지게 되는 대질 심문 장면이나, 법정의 진술 장면처럼 현실과 뮤지컬은 같은 시, 공간에서 벌어집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을 갈망하는 록시의 환타지처럼 영화 자체가 환타지에 대한 강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빈번하게 끼여드는 환타지는 영화의 현실적인 전개 방식 자체를 함몰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틈틈이 뮤지컬 화면이 끼여든다는 느낌보다는 영화 전체가 '쇼'로 보이는 거예요.
<시카고>의 주력 인물인 세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한다면 감옥에 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벨마(캐서린 제타-존스), 재판의 결과보다 신문 1면에 나는 것만 관심 있는 록시, 변호사라기보단 무대감독 같은 빌리까지. '쇼'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가 지원한 세 인물은 완벽하게 '시카고'인들입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인 벨마의 남편이 <시카고>의 세상에선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작위성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들 덕분에 시카고는 완벽한 '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견원지간이던 벨마와 록시가 한 팀이 되는 라스트 씬 조차 <시카고>스러운 수순이죠.
2. 치명적인 독이 되버린 약.
하지만 <시카고>는 결코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설명서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요. 설명서를 읽지않고서는 작동할 수 없는 가전제품처럼 <시카고>는 뮤지컬 영화에 익숙하지 않는 관객에겐 상당히 불친절합니다. 좀처럼 끼여들 틈이 없어요. 극영화적인 재미보다는 완벽하게 '뮤지컬 영화'로 둔갑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가 가진 장르적 미덕이 어떤 관객들에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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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번거로운 사용 설명서 :::
<시카고>의 주력 인물인 세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한다면 감옥에 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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