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알렉산더> 상상력의 결핍


글: 양유창
2005년 01월 03일


새해 첫 주말 개봉한 <알렉산더>가 전국 80만명을 불러모으며 대박급 흥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3시간이나 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전국 245개 상영관 확보라는 물량공세로 고지를 점령했는데요. 여기에는 대작을 선호하는 한국 관객들의 기호도 한 몫 한듯싶습니다.

<역도산>이 "나는 세계인"이라고 절규하기 훨씬 전에 유럽을 정복하고 아시아까지 영토를 확장한 마케도니아인. 아니, 2만 2천마일에 달하는 영토를 손에 넣은뒤 죽음으로서 세계를 다시 대혼돈으로 몰아넣은 야망과 분열의 화신 알렉산더.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이 거대한 인간 알렉산더의 야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촬영 현장에는 늘 역사학자 로빈 레인 폭스가 따라다니며 고증을 도왔다고 하는데요. 폭스는 알렉산더 연구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이었기에 영화 개봉 후 역사학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올리버 스톤이 폭스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 또 이 영화에서 그려진 알렉산더의 삶 중 어떤 것이 주류의 의견이고 어떤 것이 비주류적인 측면인지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니 역사가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대신 저는 영화 <알렉산더>에 더 집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헐리우드에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리 놀즈라는 영화 마니아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2004년 좋은 영화 중 한편으로 <알렉산더>를 꼽았더군요. <올드보이>를 최고의 영화로 뽑을 정도로 한국영화에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는 그였기에 그의 글을 눈여겨 보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를 2004년 베스트 1위로 꼽은 것이나 <알렉산더>를 칭찬한 것으로 봤을 때는 뭔가 의도적인 반골기질이 있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천만명 이상이 관람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이국적인 환상에 젖은 나머지 미국에 이 영화를 소개해야겠다는 마니아의식이 발동한 것이고, 또 미국 비평가들이 "중국에서 불법 DVD로 팔기에도 아까운 영화"라고 혹평을 가한 <알렉산더>를 베스트에 올려놓음으로서 "나는 바보같은 미국인은 아니다"라는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알렉산더>는 알렉산더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굵직굵직한 사건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로 사건들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안젤리나 졸리의 과장된 몸짓으로 알렉산더에 연민을 부여하고, 선왕인 필립 왕의 가학적인 면을 보여줌으로써 알렉산더의 집권 음모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필립 왕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왕위를 물려받은 알렉산더는 영토 확장의 꿈을 키웁니다. 영화는 알렉산더 후계자(안소니 홉킨스)의 시점으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스포츠뉴스 하이라이트 보여주듯이 담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와의 대전투, 히말라야에서의 악전고투, 코끼리와의 싸움 등등.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과 그 영웅을 심리적으로 지켜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클라이막스가 되며 영화는 알렉산더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요? 3시간의 러닝타임이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산만하지는 않습니다만, 영화적인 재미가 부족합니다. 동어반복의 연속이랄까요? 충분히 스펙터클한 장면이 있습니다만, 그 장면들에는 박진감이 빠져있군요.

아킬리우스와 오이디푸스 등 여러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정작 등장인물들에서는 그런 긴장관계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알렉산더에게는 아킬리우스의 고뇌가 보이지 않고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에게는 오이디푸스와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성적 긴장관계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결점 중 하나는, 그가 그의 부하들을 죽여가면서까지 집착하는 영토에 대한 열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다루는 것이라면, 우리는 영화를 볼 필요도 없이 차라리 교과서만 보면 됩니다. 알렉산더라는 한 인간을 그리는 영화에서 그가 왜 영토확장을 갈망하는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그의 야망에 동감하기 무척 힘듭니다. 왜 알렉산더인지, 왜 영토확장에 대한 끈질긴 욕구인지, 적어도 2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으며 전세계를 관객으로 삼는 영화라면 3시간 동안 계속되는 원정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간에 이 영화의 알렉산더 이미지를 조지 부시와 겹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습니다. 서구의 평론가들이 유추한 것이었는데, 특히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가 두건을 쓴 것이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을 떠오르게 하면서 도대체 이 영화의 정치적인 의도가 뭔지 궁금해한 것이죠. 물론 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그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다"고 일축했지만요.

정치적인 해석을 우려한 탓이었을까요? 영화는 큰 갈등 없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대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지금 왜 알렉산더의 일기를 봐야하는지 의아해집니다. 아무런 정치적 의지도 없고, 또 알렉산더를 조명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알렉산더>는 단지 영화적 재미와 스펙터클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일까요? 하지만, 존재이유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것 만큼이나 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지루한 시간들을 감내해야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 대군과 싸울때 독수리의 시선으로 본 멋진 스펙터클이 있기는 합니다만, 거기에 2억달러를 쏟아부었으니 보라고 권하기에는 관람료로 지불해야하는 7천원이 더 아깝게 느껴지는군요.

알렉산더는 집권후 7년간 동방원정으로 거대한 영토를 획득합니다. 영화는 그 원정 자체를 끈질기게 추적합니다.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위대한 왕'으로 불렸던 한 남자의 결핍된 가족과 그 결핍을 채우려는 거대한 승부욕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한 인간의 감정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또 새로운 스펙터클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저 불평 많은 병사들처럼 긴 원정을 따라가기만 할 뿐입니다.

알렉산더 역을 맡은 콜린 파렐의 연기는 다소 카리스마가 부족해 알렉산더를 얼빵한 남자로 만들었습니다. <21그램> <8마일> 등을 찍었던 로드리고 프리토의 촬영은 너무 밋밋해서 의아할 정도이며, 지루한 음악은 졸음이 쏟아질 정도여서 대음악가 반젤리스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나마 3시간을 꿋꿋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알렉산더의 아내 로자리오 도슨과 알렉산더의 아름다운 남자친구 자레드 레토의 기묘한 매력 덕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망쳐놓은 것은 과연 올리버 스톤의 힘일까요? 아니면 거액을 투자한 워너 브러더스와 올리버 스톤의 반골기질이 충돌한 탓일까요? 어쨌든 올리버 스톤의 차기작은 영국의 철의 여인 '대처'의 삶이라고 합니다. 기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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