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두 영웅


글: 양유창
2002년 02월 18일

[목성잠언집]이라는 쓰레기 같은 소설을 발표한 바 있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987)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오히려 내게 거부감을 주었다. 또, 최근 영화사 인디컴과 복거일 간의 저작권료 소송에서 볼 수 있듯 원작자를 무시하는 영화사의 태도 역시 내게 거부감을 주었다. 영화사의 대표는 워낙 바쁘다보니 원작자를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영화가 기획되기 전부터 미리 합의가 되었어야 하기에 변명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괜찮다. 나쁘지 않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게 묻어 있고, 기대한 만큼 결과에 만족한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만큼이나 훌륭한 시나리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설정부터 기막혔고 원작에 있는 마지막 반전 역시 감동적이었다.(주인공은 마지막에 조선말을 처음 듣게 된다) 그러나, <건축무한...>이 영화적으로는 절반의 실패를 거두었기에 우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감독은 이시명이라는 신인이다. 중간에 개봉일이 연기되는 사태도 있었다. 월드컵까지 잘 풀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한일관계가 반일감정으로 바뀌며 사태는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영화는 괜찮은 편이다. CG와 액션은 잘 어울리고, 드라마에도 신경 쓴 구석이 역력하다. 일단 중요한 키포인트에서 정석으로 인물들로부터 감정을 풍부하게 끌어낸 까닭에 비현실적인 상황도 충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다지 새로운 면은 없고, 또 장면마다 기존의 영화들에서 차용한 부분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일본어 대사에 대해서는 일본어를 모르는 필자가 눈치챌 수 없지만, 연기자들의 연기 역시 그다지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 한 명 특별하게 주목할 부분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못하는 사람도 없으니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무난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초반부터 들었던 걱정 중의 하나는 애국심에 대한 강조가 과연 어디까지 표현될까였다. 장동건이 후레이센진의 아지트로 들어올 때 그 걱정은 피크에 달했다. 감독은 나카무라 토루에게 카리스마를 심어주어 두 명의 영웅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부분을 해결하려 했는데, 아지트에서 JBI와 후레이센진의 전투씬과 나카무라 토루 가족의 행복한 불꽃놀이가 교차편집되는 부분에서 이 명분은 절정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나카무라 토루가 조금 더 붙임성 있고 여유와 웃음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기를 원했고, 만약 그랬다면 좀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과정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두 멋진 캐릭터로 인해 민족심 고취라는 1차원적인 영화외적 요소는 많이 사라진 셈이니까.

배경이 근미래인 탓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가 과연 의미가 있는 지는 의문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어 간판이나 도쿄 시내가 SF를 느끼게는 하겠지만, 일본 관객에게까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1909년에서 100년이 지난 시점이 2009년이라는 설정 외에 이 영화에서 2009년이 가지는 의미는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역사가 조작되었다는 이 영화의 배경을 관객들이 쉽게 믿도록 하기 위한 트릭일 뿐이다.

유머가 거의 없는 진지한 영화가 요즘 관객에게 먹힐까 하는 우려는 개봉 3주째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사라졌다. 투자된 제작비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고된 흥행성공이고 또 신기록을 세우는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일단 무리 없는 정도의 출발로 보여진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내추럴시티> 등을 남겨둔 한국 SF영화의 해인 2002년의 신호탄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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