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어느 비 내리는 밤 글: 양유창 2002년 04월 16일 오랜 만에 비가 내린다. 습기찬 날씨 속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다정하게 들린다. 이밤, 비행기 안에 갇힌 영혼, 혹여 날짜 경계선을 넘고 있을 영혼, 그리고 사고난 비행기 맨 뒷좌석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깊은 산속 어딘가에 묻혔을 영혼을 생각한다. 모두 편히 잠들어야 할 이 시간에도 누군가를 잠못들게 하는 이 문명의 이기는 쉽게 손댈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계속 움직인다. 그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우리 슬픈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이 비는 계속 내려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은 비오는 날 같은 우산을 받치고 걷는 연인이라고 한다. 우산 아래에서 빗방울이 톡톡톡 땅바닥을 튀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동질감을 느낀다. 우산을 나누어 쓰느라 한쪽 소매가 흠뻑 젖어버린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이 비는 계속 내려야 한다.
마음씨 착한 빗물 한 방울이 내 방 창문 사이로 들어온다. 창문 앞에 놓아둔 책 표지를 적신다. 내일은 무지개를 볼 수 있을까? 매일 해가 뜨고 오전 아홉 시면 전국의 네트워킹이 시작된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들은 가야할 곳에 도착해서 자신의 재산증식을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이 게임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임이다. 조직화된 곳은 게이머에게 두둑한 연봉과 보너스를 지급하며 격려한다. 하지만, 게임의 바탕을 잘 살펴보면 소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의 것을 가져와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부가가치를 덧붙여 파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다. 같은 물건이 계속 포장만 바뀌어 여러 주인을 거치다보니 결국 궁극적으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연의 파괴와 교통량의 증가와 재산의 변동만 있을 뿐이다. 종이를 가진 사람들이 종이를 갖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는 자를 멀리한다.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아본 사람들이 스스로 굳은 살이 배긴 손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방에는 샤갈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리고 고흐와 칸딘스키의 그림도 걸려 있다. 나는 샤갈의 색감을 좋아하고 고흐의 의지를 좋아하며 칸딘스키의 자신감을 좋아한다. 가끔 파란색 침대겸용 소파에 앉아서 폴 오스터의 책 같은 걸 읽기도 하는데 그런 때면 꼭 어김 없이 내 방으로 수선화 한 송이가 피어오른다.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이 수선화 한 송이는 물끄러미 서서 나에게 지금 시간을 묻고 있는 듯하다.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는 오늘 같은 밤에는 더하다.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 나는 대답하기가 더 곤란해진다. 난 가만히 앉아서 수선화를 관찰해보았다. 그 수선화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고, 주로 특징 없는 도시에서 나른한 오후에 서식하는 종이었다. 그리고 지금 빗물을 머금고 우리집 마당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수선화를 키울 자신이 없었지만, 그냥 꺽어 버리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너무 삭막해서 꽃을 필요로 했다. 수선화가 가득 피어 있는 꽃밭을 상상해본다. 그곳에는 외로움도 만개해 있겠지만, 그것은 시멘트 상자 안의 삭막한 외로움은 아닐 것이다. 물고기와 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가운데 풀밭에 가로누운 자의 원초적 외로움일 것이다. 결국 그 외로움은 수선화가 되고, 수선화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류 최초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재화의 이동에 의한 반복되는 부가가치가 아닌 절대적인 신가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