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itation of Life

바람이 노무현을 데려다주리라


글: 양유창
2002년 12월 18일

사실 안다. 선거를 하루 앞둔 지금, 현직 기자들은 다들 알고 있다. 어제 동아일보, 중앙일보, SBS 사장은 일선 기자들에게 '선거 중립'을 지시했다. 그동안 이회창에 기대어 편파보도해오던 이들이 갑자기 왜 중립을 선언했을까. 한편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10명 중 9명은 노무현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단다. 물론 용비어천가도 이미 만들어둔 상태다.

12월 18일 저녁 6시 명동. 이회창과 노무현의 거리유세가 동시에 열렸다. '젊은 그대'가 흘러나오는 이회창 쪽에서는 나이 든 분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고, '펠리스나비다'와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가 흘러나오는 노무현 진영에는 젊은이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있다. 노무현 쪽이 수가 더 많고, 더 활기차다.

오늘 아침 TNS-문화일보, 폴앤폴,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KBS-갤럽, 중앙일보, 한겨레 등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다만 중앙일보의 경우 두 후보간 격차가 더 벌어진 반면 한겨레 결과에서는 격차가 줄어들었다. 한겨레 기자들은 모두 의아해하는 반응이란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마도 이회창 지지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씨네라인은 어느 정도 진보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글의 초점을 20,30대 기권자와 권영길 지지자들에게 맞추려고 한다.

1. 왜 투표해야 하는가

투표하고 놀러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스키장으로 떠난 분들은 이 글을 투표일 이후에 읽을 지도 모른다. '나 하나쯤..' 혹은 '누가 되든..' 이런 마음으로 투표에 신경도 안쓸지 모른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생각해보자.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당신과 우리의 인생이 바뀐다. 또다른 IMF가 오면 직장에서 쫓겨날 것이고, 전쟁이 터지면 총알받이로 나가서 죽어야 한다. 반대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여성-장애인-노인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고 경제가 잘 풀리면 당신의 행복 부피는 늘어난다. 누구를 위해서 투표하는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누가 더 나은지 헷갈리는 사람은 노무현을 찍어라. 만약 이회창을 찍고 나서 친구에게 "나 이회창 찍었어"라고 말해보라. 아마도 주위에서 코웃음만 칠 것이다. 선거하고 나서 쪽팔리지 않으려면 노무현을 찍어라.

2. 왜 권영길이 아닌가

민주노동당 권영길의 표는 종자표다. 진보세력의 전면 부상이라는 면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 언젠가 그것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미래에도 '집권'의 꿈을 이룰 만큼 성장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집권은 사회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브라질의 룰라 후보처럼 정책을 오른쪽으로 더 돌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민주노동당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먼저 이회창이 당선되는 경우, 민주당은 급속히 와해될 것이고 보수파에 맞서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정계가 재편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나라당 대 민주노동당으로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사회를 더 경직되게 만들 것이고 원내 의석 하나 없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이나 국민통합21과 연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은가. 둘째 노무현이 당선되는 경우, 사회가 조금 진보화되는 만큼 민주노동당이 파이를 키울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믿고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원내진입에 성공한다면 민주당과의 정책공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나는 노무현이 당선되고 권영길이 5% 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것을 최상의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노무현의 당선이 우선이다. 극우파인 한나라당의 집권은 막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이 땅에 절실한 언론개혁, 정치개혁, 수도권 집중억제, 한반도 평화정착, 지역감정 타파, 경제성장 등을 이루기 위해 한나라당은 사라져야 하고, 이에 현실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

권영길은 TV토론에서 자신의 득표가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전략적 실수이다. 권영길의 지지율은 이미 높다. 어쩌면 벌써 10%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들은 당장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무현을 선택할 뿐이다. 지난 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장-마리 르펜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여러 좌파들이 연합해서 보수후보 자크 시라크를 전략적으로 지지했다. 지금은 단결할 때다. 이회창 지지자들이 똘똘뭉쳐 장세동도 사퇴시키고 흑색선전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과연 이회창 대통령 아래에서 우리가 더 많은 시위와 끊임없는 정권비판을 해야겠는가? 역사는 거꾸로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바꿀 수도 없다. 지금은 노무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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