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는 왜 장편과 다른가

기획특집

단편영화는 왜 장편과 다른가 :::

이윤형 | 2002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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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흥행과 <취화선>의 깐느 출품을 제외하고는 요즘 한국 영화계는 너무 조용하다. 하지만 언더 (흔히들 ‘인디’라고 하나 별로 맞는 말 같지도 않고 ‘마이너’라고 하기엔 더욱 찜찜해서 내 맘대로 부르련다)쪽에서는 계속 단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고 있어 5월에 열릴 ‘2002 인디포럼’과 같은 날에는 대안 영화제의 성격을 갖고 있던 인디포럼의 대안임을 자처하고 ‘단편 영화 전문 평론 집단’이라 자신들을 부르는 ‘단.평.단’이 숨은 단편 영화를 찾는다며 영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소식을 듣고 이번 인디포럼에서 상영할 영화들 목록을 보니 한 방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중파 방송까지 탄 단편영화를 비 경쟁 영화제이지만 상영을 위해서는 출품작 중 경쟁을 해서 뽑아야 하는, 심지어 ‘인디’라는 단어까지 들어가 자신들은 가진 거라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창의력밖에 없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곳에서 상영한다는 것은 조금 앞뒤가 안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디포럼은 개털이라도 걸친 게 되고 개털이라도 걸친 놈은 초겨울이라도 나니까 더 독립적인(?) 개털도 없는 놈들 모이라는 식이 되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첫째, ‘단.평.단’의 취지에는 기립박수를 보내나 그들이 하는 평론에는 별로 동의를 못하겠고, 둘째, 내게 그날, 만약 밖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인디포럼에 갈 것이지만 그날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길 리 만무하며, 더더욱 나는 ‘영화제’라는 것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눈길도 안 주게 만든다.

최근의 단편영화

며칠 전 요즘 단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작품으로 장편 데뷔를 하기 위해 만드는 듯 보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글은 언뜻 보면 다 맞는 듯 싶지만 사실 단정지을 수 없는 논쟁 거리들이 있기에 나는 좀 더 요즘 단편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사람이 단적으로 예를 든 부분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일단 뛰어>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조의석 감독 등이 졸업한 영상원의 졸업 영화였는데 그 영화들이 충무로 만큼의 화려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이 퀄리티는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 같다) 다양한 시도와 재기 발랄함 역시 충무로와 다를 바 없다고(아이디어나 실험 정신이 부족하다는 말인 것 같다) 했다. 그러니까 영상원 학생들이 정재은 감독이나 조의석 감독처럼 빠른 장편 감독 데뷔를 위해 ‘웰 메이딩’ 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 주제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잠깐 영상원 얘기를 하자면, 영상원은 요즘 정말 ‘잘 나간다’. 개원 초 시끄럽던 주변은 말끔히 청소한 듯 여러 면에서 다양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몇 년 전 서울예대 영화과 학과장이자 평론가인 강한섭 교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이자 영화감독인 김홍준 교수가 모 잡지에서 싸움 붙여(?) 이뤄진 대담에서, 강한섭 교수는 영상원이 주장한 영재 교육은 이미 유학파인 송일곤이 단편영화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예술성을 널리 인정받으면서 말이 안 되는 것이 되버렸다 라는 식으로 말했었는데, 지금 보면 상황이 영상원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는 것 같다. 비교적 빨리 데뷔한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로 많은 여성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흥행에서도 심심치 않았고 또 국제 영화제에서도 선전을 했으니. . 강한섭 교수의 무차별 무대뽀의 직설적 공격이 지금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건 사실이다. (내가 본 강한섭 교수는 말을 일단 내뱉고 나중에 수습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반면에 김홍준 교수는 영상원에 박광수, 홍상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촬영한 박현철 촬영감독에 근래에는 이창동 감독까지 두게 됐고, 제자들이 속속 장편 감독 데뷔를 하니 꽤 든든할 것이다. (이 이야기와는 상관 없지만 내가 본 김홍준 감독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 같다)

영상원은 단편영화에서도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다. 대학 중 가장 좋은 기자재를 보유하고 있고 (강한섭 교수는 이 과분한 기자재를 다른 단체와 공유해야 한다고 했고 김홍준 교수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했다. 둘 다 말은 안된다.) 또 많은 작품을 만들고 있어 심심치 않게 공중파도 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단편영화’ 하면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영화 아카데미와 영상원을 떠올리기도 한다. -

다시 이야기를 이어.. 정말!! 진정!! 그들은 빠른 감독 데뷔를 위해 자신들의 창의력을 누르고, 재기 발랄함은 카메라 뒤로 숨긴단 말인가? 그들이 재능이 없는 건 아니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재능이 없다고 판명난다면 영상원의 ‘영재교육’이라는 말이 더욱 낭떠러지로 몰린다.) 진정 그들이 ‘그런’ 생각으로 ‘그런’ 영화를 만든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일 것이다. ‘단편영화는 습작이 아니다’라고 몇 년 전 잡지에서 인터뷰를 한 김홍준 교수의 제자들이 그렇다면 더더욱. . 만약 모씨의 말대로 진정 그들이 그랬다면 우리는 분명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상관관계를 따져야 할 것이며 단편영화 하나 잘 만들어 장편 감독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건지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단편영화란 무엇인가. 내가 알기론 (난 자료조사를 하지 않을뿐더러 확신하는 지식이라곤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정도가 전부다) 타이틀과 크레딧 합쳐 40분 이내의 영화가 단편영화이다.

최초의 영화라는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에서의 귀가>나 에디슨이 찍은 <근육질의 남자>도 40분 이내이다. 뭐, 위의 두 작품이 영화라고 믿는 사람에겐 장편 영화보다 단편영화가 먼저라고 믿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100분 가량의 영화를 ‘정상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 왜 그런 영화를 만들게 된 걸까. . 아마도 (역시 추측이다) 창의력의 결과물이 만들어 냈다기 보다는 돈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뭐, 계속 추측을 하다간 창세기 전 까지 들어갈 것 같으니 그만하기로 하고. 장편 영화와 단편영화의 차이점은 그저 상영 시간의 문제 뿐일까. .? 정말 아주 단적인 예로 나의 어머니는 “단편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해”라고 말하신다. 재미없으니 지루하겠지만 채 10여분인 단편영화가 지루하다는 건 아주 큰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나의 작은형은 “왜 단편영화는 흑백으로 찍냐. 그래야 맛이 나나”라고 했다. 난 이 말에 “흑백이 싸고 편해”라고 대답해버렸지만 사실 흑백 단편영화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닌 걸 감안한다면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작은형도 단편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왜 나의 어머니는 단편영화가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말하신 걸까. . 그렇게 말하신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없고 지루하니까. . 문제는 왜 재미없고 지루하냐지. . ^^ 역시 추측의 나래를 펴보자면. . 장편 영화는 이야기 없이 진행되기가 힘들다. 의미 없어 보이는 영상물만을 60분 넘게 나열하면 그걸 보는 사람을 정신병자 만들 가능성이 있고 짜임새 없는 (재미없거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등..) 이야기는 관객에게 창작자가 암살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영화는 결정적으로 수익의 측면에서 가장 타격이 크다. 하지만 40분 이내라고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10분 내외의 작품들이 많은 단편영화는 관객의 참을성에 동의를 얻어 아무런, 정말 아무런 이야기나 할 수 있다. 10여분이면 변기에 앉아 힘주다 실패해서 허탈해할 시간이나 맞먹기 때문에 그리 화낼 만한 시간은 아니니까. . 하지만 문제는 왜 재미없느냐이다. 이건 창작자에게로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

첫째, 대사의 문제이다. 단편영화에는 대사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요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말을 시작하면 끝을 맺어야 하는데 짧은 시간에 말을 많이 하게 되면 함축적인 부분이 없어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100분의 영화를 10조각 낸 것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러니 최대한 창의적인 미장센으로 들리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으로 말하려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멋이다. 그냥 말없으면 멋있어 보일까 해서 하는 경우인데 이런 사람은 말(馬)없는 뚜벅이 서부 건맨처럼 우습게 보일 뿐이다. 보통 이런 사람은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확고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사람의 단편영화를 보면 단편영화를 모두 싸잡아 욕해도 시원하지 않을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심지어 단편영화는 말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시간의 문제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장편 영화에 길 들여진 탓일 수도 있는데 단편영화에는 ‘기/승/전/결’의 개념이 거의 없거나 있다면 시간상 너무 짧아 준비 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시간’이란 영화의 전체 상영 시간이 아니라 이야기의 클리프 행어로 가거나 간 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시간이 없고 또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분위기를 만들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기술적인 문제이다. 최근에는 무슨 의도인지 이효인 교수 ‘발끈’하게 유명한 감독들이 많은 돈을 들여 단편영화를 만드는데 단편영화는 주로 많은 돈을 갖고 있지 않거나 많은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에 시각적인 측면에 많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멋있는 화면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욕구도 당연하다.

넷째, 배우의 문제이다. 스타를 보고 싶어하는 건 관객의 당연한 욕구이다. 유명하지 않은 건 물론이며 배우의 얼굴로 창의력을 표현하려는 의도인지 가지각색, 그것도 매력 없는 얼굴들을 골라 영화를 찍으니 관객의 시선을 붙잡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난 이것이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단편영화는 그것으로의 매력이 있는 것이고 스타가 출연한다면 그것만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 차라리 왜 우리 조기축구회에는 홍명보나 황선홍 같은 유명한 사람이 없는 지 고민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네번째의 문제점은 어쩌면 ‘캐릭터의 문제’라는 말로도 대체할 수 있는데 짧은 상영시간을 갖고 있으니 튀는 캐릭터로 100분만큼의 효과를 보려하는 창작자들이 큰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단편영화에서 정상적인 인간을 보는 기쁨이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관객과의 접촉 문제이다. 이 말은 관객이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단편영화를 접하게 되느냐에 관한 문제인데 난 최근에는 뛰어난 배급사들과 높은 관심에 의해 태어난 공중파의 단편영화 프로그램이 이 문제를 많이 해소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다시 작품 자체로 돌아가는 것 같다. 단편영화를 ‘영화’가 아닌 ‘단편영화’로 인식하고 만드는 창작자들의 아둔한 작품들은 ‘단편영화는 예술영화’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 설득은 하지 않고 실망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된다면 단편영화는 여전히 ‘재미없고 지루한’ 것일테고 창작자들의 측면에서는 ‘빨리 데뷔하는 좋은 길’일 뿐이다.

여섯째, 소재의 문제이다. 많은 단편영화에서 '기획 의도'나 '감독의 변' 등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일상'이다. 미국 공황기 시대에 영화가 큰 붐을 이룬 이유는 영화가 갖고 있는 일종의 '판타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단편영화들은 반(反)헐리우드를 외치기라도 하듯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물론 '일상'을 영화로 재밌게, 혹은 독특하게 표현한다면 아주 좋은 소재일 수 있으나 그저 화면에 일상만을 담는다면 그보다 지루한 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 소재에 꼭 주제가 담겨있을 필요는 없지만 재미없는 소재에 주제마저 없다면 그것은 예술이란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그저 '일상', 그 자체일 뿐이다. 소재의 개발은 충무로 영화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것은 ‘단편영화의 문제점’이 아닌 ‘단편영화가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로써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그 이유들은, ‘마땅히 고쳐져야 할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단편영화 자체의 고쳐져야 할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그 창작자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건 나로써는 너무나 건방지고 오만한 행동이며 꼭 해야할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편영화의 장점은 하나의 이미지, 혹은 하나의 간단한 이야기를 ‘영화’라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 관객의 참을성에 동의를 얻어 실험 역시 할 수 있는 것. 위에서 마치지 못한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대충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단편영화 감독과 장편영화 감독, 그리고 데뷔 시기

정재은, 김동원(B), 조의석, 최화진, 모지은 감독 등은 재능 있는 단편영화로 인정을 받아 20대에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했거나 하는 사람들이다. 정재은과 모지은 감독은 여성에 관한 단편영화로 인정받았고 감동원 감독(김동원 감독의 충무로 경력은 <플란다스의 개>의 스크립터가 전부인 걸로 안다)의 <81,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암울한 시대의 매력적인 표현과 코믹한 연기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최화진 감독은 <쿵쿵딱 별에는 기타리스트가 없다>라는 단편영화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조의석 감독은 잘 모르겠지만 영상원 최연소 합격을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이들은 충무로 경험이 거의 없다. 스크립터였거나 모지은 감독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게도 스토리보더였다. 우리 나라의 도제 시스템은 아주 많은 단점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빨리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직업 조감독’이 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 십억을 써야 하는 영화에 단편 영화만으로 재능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제작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장편영화는 ‘영화’이지만 단편영화는 ‘단편영화’로 인식된다. 기준이 장편영화에 있기 때문에 단편영화는 습작 밖에 안 된다는 게 제작자들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장편영화에서의 감독이란 단편영화처럼 열정 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스탭들의 하루 식사가 몇 백 만원일 만큼 치열한 돈 싸움이다. 장편영화 현장에서는 우정, 열정 따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치 않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사람들을 완벽히 관리하면서도 뛰어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장편영화 감독에게서 제작자가 요하는 것은 작품에 관한 것 만큼이나 리더쉽에 관한 것이란 건 뻔하다. 그러니 사실상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는 ‘영화’라는 공통된 단어가 들어갔을 뿐 별로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에게 이봉주 선수의 운동을 돕던 사람과 칼 루이스 중 오래 달리기 시킬 사람을 고르라면 누구를 고르겠는가. 참 어설픈 비유라고 생각되지만 이 질문만큼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거리는 먼 것 같다.

위에서 말한 감독들 외에도 올해에는 20대에 감독 데뷔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20대에 뭘 안다고 감독이 되겠느냐”라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부터 4～50년 정도 과거로 가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시기에 데뷔하거나 주로 활동하던 감독들, 즉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끌던 감독들 대부분이 20대에 데뷔를 했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처럼 10년 넘게 연출부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 같다. 그 감독들이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그들이 지금처럼 특수효과를 쓰지 못하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못했던 것이 그 감독들의 나이와 상관이 있는가? 20대에 데뷔하면 모두 최야성 감독 작품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영화를 아주 좋아하고 영화를 내 생계수단으로 하며 살고 싶지만 영화가 마치 삶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시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밖에 나가 고흐가 쓰던 것과 같은 크기에 같은 재질로 된 도화지를 살 수 있고 오히려 더 좋은 이젤과 붓을 살 수도 있다. 영화란 오락적인 요소로써 아주 큰 재능을 보이고 있다. 꼭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고다르의 실험 정신이나 타르코프스키의 철학적 고뇌를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단편영화는 몇 년 전에 개발되거나 발견 된 것처럼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 와서야 장편영화 감독 데뷔에 단편영화를 떠올리는 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지금 맹렬히 활동중이 중견 영화감독은 대부분 아주 뛰어난 단편영화로 시선을 집중시킨 경력이 있다. 곽경택 감독은 <영창 이야기>, 곽재용은 <선생님 그리기>, 김성수 감독은 <비명도시>로 주목을 받았으며 이 영화의 조감독을 했던 <여고괴담>의 박기용 감독은 몇 편의 장편영화 연출부를 하고 만든 <과대망상>으로 클레르몽-페랑 등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재용, 변혁 감독이 공동 연출한 <호모 비디오쿠스>는 거의 한국 단편 영화의 전설로 불린다. 이 외에도 김의석, 임순례, 정지우, 장윤현, 이정국, 그리고 데뷔 시기는 최근이지만 단편영화로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송일곤 감독 등 많은 감독들이 단편 영화로 많은 주목을 끌었었다.

내가 기성 감독들의 단편영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영화란 창작자와 함께 관객이 움직이며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편영화를 ‘단편영화’가 아닌 ‘영화’로 당연하게 인식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상하리만큼 큰 관심은 곧은 길 보다는 굽은 길을 선호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한국의 영화는 굽은 길보다는 지금의 곧은길을 더욱 깨끗하게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현실이나 제도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의 작업에 대해 내가 무지하기 때문임을 밝히련다. 뭐, 맘만 먹으면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 나란 놈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