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시네마천국] PD의 당신들의 시네마天國 :::
이승훈 | 2001년 05월 04일
조회 3433
1. Job is Job
남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영화를 많이 보겠다고.... 그것도 공짜로.
사실 그러기도 하다. 하지만 단지 즐기기 위해 마음 편하게 본 적이 제대로 있던가. 주말 개봉관을 찾았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매일 매일 영화 관련 기사나 아이템 때문에 머리 쓰고 주말마다 다음주 프로그램에서 다룰 영화들 (차라리 인서트 화면이라는 표현이 낫겠다)을 원고, 논문과 곁들여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 어디 즐겁기만 하겠는가. 어느새 [시네마천국] 제작한지 6개월이 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간 나의 일상이라는 건 그저 금요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프로그램은 시간과 정열, 그리고 체력을 있는 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놈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영화보기가 즐거움으로 제대로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역시 일(Job)은 성서에 나오는 욥(Job)이다. 사실 [시네마천국] 맡기 이전에 영화는 정말 나의 즐거운 텍스트였다. 고통이라는 것은 단지 그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 뿐이었다.
2. 영화 대 영화프로그램
 | | [시네마천국]의 진행자 김창완, 오동진 |
당신들의 '시네마 天國'은 어떤지 궁금하다. 프로그램 이름이 아닌, 그저 당신들의 즐거움인 영화세상. 당신들의 주말은 어쩌면 영화가 수놓고 있는지 모른다. 봇물같이 터지는 개봉영화들, 주간지들, 그리고 각 방송사마다의 영화프로그램들.
그 중 가장 편하고 값싸게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영화프로그램이겠다. 일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두어 시간 시청하면 대여섯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즐거움을 주니까. 그저 영화프로그램만 봐도 영화를 본 것처럼 행세(?)할 수도 있다. 워낙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니까 잘나가는 흥행작 안보거나 그에 대해 한 두마디 거들지 못하면 압력(peer pressure)도 느끼겠지.
하지만 영화에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아우라(aura)라는 게 있다. 일종의 흔적이라는 것. 그 영화를 누구와 봤던가, 보고 난 후에 서로가 무슨 말을 주고 받았던가. 한없이 그 날을 사로잡았던 그 배우는 누구였던가, 아니면 스크린을 통해 열려진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 아련하고도 알싸한 기억들. 추억의 양념으로 영화의 면발은 더욱 쫄깃해진다.
스크린 속 영화의 매력은 무얼까. 결코 되돌려서 다시 보거나 건너뛰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릴이 돌아가면 상영은 단 한번이다. 그래서 영화는 거창하지 않지만 불가역적인 시간 위의 인생인 것이다. 소위 영화를 모으는 시네매니아라는 사람들,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하다. 지나버린 시간들을, 살아보지 않는 타인들의 인생을 가지는 것이다. 아니면 엿보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영화관 스크린과는 달리, 요즘의 영화프로그램들은 어떤가. 먹기좋게 회를 친다. 장면들은 미분이 되고 감동은 강요된다. 소위 편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박탈하고 영화의 순수함을 훼손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일반인들이 축약된 정보를 좋아하는 다이제스트 신드롬이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그들을 길들였는지 되짚어보자. 그래서인지 한 영화에 대한 평가는 획일적이기도 하고 충동적이다. 자신의 눈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시각을 따른다. 다양한 삶의 결을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영화프로그램이 은연중에 끼치는 폐해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말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대 다시는 영화의 아우라로 가지 못하리"
3. 영화, 그 진정한 맛을 위해
식습관을 고칠 필요가 있겠다. 패스트 푸드는 몸에도, 정신건강에도 안좋다. 화학조미료를 쓰면 비슷한 맛은 나지만 우러나온 진국 맛은 내지 못한다. 일종의 키취겠다. 자판기에 그려진 원두커피 보면서 종이컵에 담겨진 커피 맛이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대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제대로 한번 맛본 커피 맛은 평생 잊지 못한다. 10분짜리 다이제스트로 편집된 영화 백 편이 결코 온전한 영화 한 편 당해내지 못하리라. 영화의 아우라를 온전히 지켜주는 영화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램이다.
|
  
|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