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마누라> 1시간 40분 동안의 지독한 고문!
글: 원상이
2001년 11월 09일
 |
수많은 영화들을 보다보면 간혹가다가 사람을 불쾌한 기분을 들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우선, 아무리 호러영화를 좋아한다지만 쓸 데없이 잔혹한 장면들만 화면을 시뻘건 피로 수놓아서 도저히 감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영화들이 있겠고, ( 사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탁군은 고어매니아니깐....--;; )
또는 징그러운 장면들이 속출하는, 가령 일본 영화 '기니어피그' 시리즈나 '오르간' 같은 영화들, 즉 자신이 어제 먹은 밥의 내용물을 다시금 확인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들도 있다.
세번째는 포르노도 아닌 것이 거의 포르노 수준의 성애장면과 과다한 성기노출등, 이미 에로스를 넘어서는 수준의 '빨간' 영화들도 그런 영화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폭 마누라' 다. 이건 어떤 경향에 의해 불쾌하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정말로 불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1시간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어두운 극장 안에서 꼼짝 못하고 앉아서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한테 바보취급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란, 정말로 불쾌하기 그지없는 경험이다.
일단, 본격적으로 까대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언제나 불거져 나오는 그 망할 넘의 '등급' 이라는 문제이다. 이 영화는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과도한 성애장면과 폭력씬 ( 높으신 어르신네들이 청소년이 보면 따라한다고 개지랄을 떠는 ) 과 욕설이 난무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고등학생들이 보면 수준이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고가'라는 등급만 믿고, 삼삼오오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러 온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탁군이 이 영화를 볼 때에도 초등학생도 아닌 듯한 아이가 극장 안에 있었는데, 마침 신은경과 박상면의 '응응' ( --;; ) 장면이 한 참 극장 안을 신음소리로 달구고 있었다. 그 때 이 꼬마가 큰 소리로. ' 엄마, 쟤네들 왜 저렇게 싸워? ' 라는 말이 극장 안을 가득 메꿨다.
이 얼마나 민망스런 장면인가? 차라리 이 놈의 꼬맹이가 저 응응 장면을 이해했다면 모르지만, 항상 청소년에게 유해한 환경이라며 온갖 영화들에 딴지를 걸어왔던 등급 위원회의 모순적 행동이 탁군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돈 썩어 넘치는 세원이 아저씨의 로비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를 까대보자. 만약 이 영화가 재미라도 있었다면 극장 안에 아이를 델꾸 오는 부모님들한테 화살이 갔겠지만 영화는 정말로 쓰레기 같았기에, 난데없는 등급 위원회까지 화살이 날아가게 된 것이다.
일단, 페미니즘 적 시각에서 신은경이 기존에 자신의 고유역할을 거부해온 다른 여전사들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 ( 여성이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남성성을 획득한 뒤 남성 사회를 지배한다는 ) 은 다른 사람들이 입 아프게 떠든 얘기이니 제쳐두기로 하자.
감독도 뭐,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대신에 이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코미디와 액션이라는 점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자.
우선 코미디, 한 마디로 하나도 안 웃기다. 성역할이 바뀐데서 오는 코믹함이 주를 이뤄야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배우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런 식의 거창한 성역할 전도가 아니다.
박상면을 여자라고 생각해보고 신은경을 남자라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남편에게 내조하는 아내와 집안 일에 무심한 남편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이게 무슨 역할 바꾸기인가. 이건 단순한 배우바꾸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무데나 웃기려는 유치찬란 니미뽕 개그도 있다. 백상어와의 첫 대면에서 갑작스레 고양이가 기절하고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집어 넣은건지.
이미 이 장면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봤던 것이고, 칼부림이 날 뻔하는 이 장면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
더군다나 양아치들한테 죽음을 당한 빠다의 복수를 위해 '백상어'패와 일대격전을 벌이는 라스트에 이르면 허탈함의 수준을 넘어 나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빠다'를 죽인 건 '백상어' 패거리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상황 그 자체는 웃긴다. 이런 식의 상황전개는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 에서 정말로 기막히게 관객을 웃기는데에 한 몫을 했던 요소이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배우들은 끝까지 그 오해를 풀지도 못하고, 너무나 진지하게 그 상황에 임하고 있다. 뒤늦게 날아온 신은경조차 전나 진지한 표정으로 ' 네 ( 백상어 )가 그렇게 비겁한 놈인 줄 몰랐다.....' 라고 씨부리는데, 실상 하나도 안 비겁하다. 지가 잘못 알아서 들어와 놓고 왜 난리인가.
이 장면은 정말로 코미디로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 조금 과장한다면, 뒤늦게 날아온 신은경이 '니들이 비겁한 줄...어쩌고 하면 옆에 멀쩡하게 있던 부하들이 '형님, 얘네 아니라는데여....' 뭐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든지, 백상어가 전나 맞으면서 '씨바 우리 아니라니깐 왜 지랄이여....' 이런 식으로. ) 그렇지 않다면 이 장면을 빼고 필연적인 백상어패와의 이권다툼으로만 표현했어도 충분한 장면이다.
자, 숨 좀 돌리고 다음은 액션. 뭐 이 정도 액션은 요새 한국영화든 헐리웃 영화든 다 한다. 신은경이 직접 다 했다면, '우와!' 했을 것이나, 몇 개월동안 무술 연습을 했다는 신은경은 싸움에만 들어가면 왜 얼굴 조명이 어두워지고, 덩치는 커지고, 옆이나 위에서만 앵글 잡히면서 얼굴 알아보기 힘들게 카메라 흔들어대는지 정말 궁금했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많이 얼굴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가만히 서서 가위 휘두르는 장면이나 피아노 줄 단 티 풀풀 날리면서 드럼통 타고 '날으는' 장면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조폭 마누라'는 정말 운이 좋은 영화다. 때를 잘 탔고, 홍보가 잘 됐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충무로 제작자들이 이거보고는 너도나도 대충 만들어서 흥행시키고 싶다고 한다는 얘기가 정말로 믿어져 앞 날이 깜깜할 뿐이다.
물론, 이 영화를 만든 제작진들은 정말 너무도 열심히 만들었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자판이나 두드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영화를 쓰레기통에나 쳐박고 싶은 심정이다.
p.s. 서세원씨, 또 영화 만든다고요? 서정희씨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번엔 어떻게 성공했지만 또 이렇게 만들면 망할겁니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