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악령의 상자 (Hellraiser)


글: 김종철
2001년 09월 04일

원작 :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 - The Hellbound Heart
감독 :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
각본 :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
출연 : 더그 브래들리(Doug Bradley), 앤드류 로빈슨(Andrew Robinson), 클레어 히긴스(Clare Higgins), 애슬리 로렌스(Ashley Laurence)
음악 : 크리스토퍼 영(Christopher Young)
국내출시 (첫번째 출시 / 두번째 출시 / DVD 출시): 세신영상 / 우일 / 얼라이 엔터테인먼트
제작 / 출시 : 1987년 / 1989. 8. 10 / 2000. 8. 11 / 2001. 4 DVD 출시
런닝타임 (미국판 / 한국초판) : 93분 / 90분

신사의 나라인 영국의 공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는, 한국에서는 그의 본업인 작가로서의 명성보다 오히려 공포영화의 감독으로서 더욱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직접 감독한 작품은, 한국에서는 전혀 소개가 되지 않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단편 2편과 더불어 바커 자신의 원작 소설이 망가짐을 견디다 못해 [헬레이저]를 필두로 한 장편 3편을 포함한 다섯 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바커란 이름이 생소한 한국 영화 관객들 또한 부지기수이지만, 적어도 그의 원작소설인 [Hellbound Heart]를 토대로 한 첫 장편 데뷰작이자 최고 걸작인 헬레이저[Hellraiser]를 모르는 영화 관객들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핀헤드(Pinhead)'는 다들 알 것이다.) 몇몇 공포영화들은 불모지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많은 세월이 흐르며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며 영국 공포영화 명문 제작사인 해머[Hammer]사의 몰락과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버린 영국 공포영화의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매력으로 똘똘 뭉친 작품 헬레이져[Hellraiser] 또한 한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 여러 명작 공포영화 중 하나이다.

[헬레이져]가 가지는 매력은, 극중에서 지옥의 수도승으로 나오는 '핀헤드'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카리스마가 다른 많은 공포영화들 보다 눈에 띄게 두드러져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1980년대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던 공포영화 캐릭터들은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 -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였고, 이들은 다른 공포영화들의 캐릭터가 넘볼 수 없는 자기만의 개성과 특출한 매력으로 고유의 영역을 지니고 있었으며, 더 이상의 공포영화 캐릭터는 이들과 경쟁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바커의 분노로 인해 혜성처럼 등장한 '핀헤드'는 이들 막강한 3인방의 틈새에서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캐릭터의 매력이 영화의 완성도를 뛰어넘는 [헬레이져]의 엄청난 장점인 것이다.

또한 [헬레이져]는 198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미국 슬래셔 공포영화들의 홍수속에서, 이놈이나 저놈이나 별 다를게 없는 뻔한 스타일에 싫증을 느끼던 한국의 공포영화 팬들에게 상당한 강도의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게 되었고, 과거 고딕 호러의 '분위기'를 갖춘 영국 공포영화를 극장과 출시판 비디오로 접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를 맛 볼 기회를 준 셈이 되었다. 늘 저급 장르로써 인식이 되고 있는 당시의 공포영화들과 차별되게, [헬레이져]는 인간이 가지는 욕망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야기를 바커의 탄탄한 원작을 토대로 다룸으로써, 기존의 다른 것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슬래셔 공포영화의 그것들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설정과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적정한 수준의 고어 장면을 유지하며, 특유의 분위기로서 세계를 비롯한 한국의 뭇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한국에서 최초로 출시된 비디오는, [헬레이져]가 아닌 [악령의 상자]라는 싸구려틱한 제목으로 나와있다. 제목만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가늠한다면 이것은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쓰레기 영화 중의 한편이 되는 셈인데, 굳이 제목을 저렇게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디오 케이스의 앞면은 [헬레이져]의 카리스마인 '핀헤드'와 인간의 주체할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열게 되는 퍼즐을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어, 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해주어 장르팬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또한 [헬레이져]는 한국에서 2번에 걸쳐서 비디오 출시가 되었으며, 최근에 나온것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무삭제판'이라는 타이틀을 박아놓고 나와 있기도 하다. 여기에 명작에 걸맞는 대접인듯 조만간 '한국판 DVD'가 발매될 예정이어서, 한국의 출시판 시장에서는 상당히 색다른 기록을 가지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DVD는 [헬레이져]와 속편인 [헬바운드]를 묶은 박스판으로 [피의 책(Books of Blood)]까지 부록으로 끼워 멋있게 나온다고 하니, 궁국의 수집가라면 한국에 발매된 각기 다른 버젼의 [헬레이져]를 모두 콜렉팅해 진열해놓는 재미 또한 쏠쏠할 것이다. 당연히 영화가 가지는 분위기를 제대로 만끽을 하려면 DVD가 최상의 선택이 되겠지만, 출시판 비디오도 싸게 판매를 한다면 무조건 구입을 해야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 공포영화 팬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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