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섹스를 다룬 2편의 영화 <썸머 타임>, <노랑머리 2>


글: 강병융
2001년 10월 14일

<썸머 타임> 이 영화를 만든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

<썸머 타임> 개봉 전, 이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부장이 회사로 가편집 필름을 가지고 왔다. 초반부만 잠시 보고, 중요한(!) 장면들은 보지 못했다. 영화 개봉 즈음에 스포츠 신문에서 주연배우 김지현의 노출에 관한 기사가 1면에 실렸다.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화 공식 사이트에 메이킹 필름이 실린다고 해서 사이트로 가보았다. 게으른 탓인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을 해서 서버는 다운되었고, 난 결국 아무적도 보지 못하고 지겹도록 소문만 들었다. 어느 포탈 사이트에서 <썸머 타임>의 메이킹 필름과 야시시한 장면들을 모아, 3회에 걸쳐 공개하였다. 난 뭔가(?)에 환장한 듯 가보았다. 화면이 작아서 탈이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들리는 신음소리며, 현란한 동작들이 발정케 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오, 이 정도면 영화는 장난 아니겠는걸.'

영화 개봉이 임박했다. 시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학생 겸 회사원인 나는 학교 문제로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정말 아쉬웠다. 이런 영화일수록 큰 화면으로, 빵빵한 사운드로 봐야 제맛(!)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인데. 그렇다고 돈 주고 볼 생각은 아니었다. 영화는 개봉했고, 나름대로 혹은 예상을 깨고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류수영은 스타덤에 올라 텔레비전 엠씨로도 나왔고, 김지현도 많은 인터뷰를 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관객은 무려 22만이나 들었다. 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곧 영화는 비디오로 나왔다. 난 침을 흘리며 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갈 때마다 비디오를 거꾸로 꽂혀있었다. 앗,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비디오 샵에 갔는데 <썸머 타임>이 웃고 있었다. 아싸하면서 골랐다.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잼싸게 집으로 올라와 데크에 테잎을 넣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관람에 열중했다. 류수영이 나오고, 김지현이 등장했다. 류수영이 김지현 윗집에 살게 되었다. 최철호가 김지현을 겁탈했고, 류수영은 구경했다. 재차 반복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류수영은 용두질을 하고, 그 다음은?

음,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현이 처음 나왔을 때, 흥분은 김지현이 재차 나올 때는 일어나지 않았고, 세 번째 등장했을 때는 웃겼고, 네 번째 이후에는 짜증이 났다. 결국 난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테잎까지 처음으로 돌려 갖다 주었다.

마지막으로 박재호 감독에게 하일지 식으로 묻고 싶다.
"박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

참, 시간 나면 차이 밍량의 <구멍>을 보면서 <썸머 타임>의 '구멍'과 비교하시길….

<노랑 머리 2> 김유민의 영화 만들기

하리수라는 이름보다는 김유민이라는 이름에 때문에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사에서 근무하고부터 이상하게도 왠만한 영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습성이 생겼다. 이유를 들자면, 영화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다시 <노랑머리 2>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선 아쉬운 부분은 논쟁의 중심이었던 하리수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리수를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는 편이 옳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하리수는 못마땅하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것에 관한 진위는 중요치도 않다.

암튼, 일단 하리수는 연기를 못한다. 그는 발성조차 안된다. '달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나레이션마저도 내 귀엔 어색했다. 김유민 감독은 이러한 하리수의 한계를 알았던지 대사를 주지 않는다. 하리수는 시종일관 차갑게 침묵하지만, 이는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는 이 영화의 성격에 역행하는 꼴이 된다. 또한 이 영화는,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리수 중심의 영화가 절대 아니다. 물론 하리수를 홍보에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홍보사와 기획파트의 소관이고, 감독은 크게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리수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영화와는 너무 다른 이미지를 발산하고 있어서 영화에 마이너스 요소를 주고 있다.

하리수가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는 속빈 강정과도 같고, 답답하고 어눌할 뿐이다. 그저 칭찬할만한 부분이라면 노래하는 장면 정도가 아닐까? 하리수 말고 실망스러운 부분은 늘어진 에피소드이다. 영화는 크게 세 캐릭터의 이야기와 그 세 캐릭터가 만나서 겪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즉, 4가지 에피소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4개의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후에 말할테지만, 이 엮임은 흥미롭다. 그럼에도 마지막 에피소드의 사족 같다. 세명의 캐릭터들이 서로 엮인다는 설정은 흥미롭고 극적이지만, 그 과정은 지루하다. 특히 경찰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짜증마저 난다.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 감독은 주제 의식의 전달 혹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조망 내지는 다큐 작가가 헤어지게 하는 계기로서의 삽화로 선택한 것이 경찰의 등장이었던 것 같지만, 이 어떤 효과도 얻지 못한다. 만일 런닝 타임을 줄이고, 네 번째 삽화를 압축했다면 더욱 좋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난 <노랑머리 2>를 보면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떠올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유민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짜투리 필름을 사용했던 열정과 김유민 감독이 디지털 카메라로 저예산 영화를 만들었던 열정이 같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임상수 감독이나 문승욱 감독이 지닌 영화에 대한 열정도 집고 넘어 가야지! 참, 그렇다고 다른 감독들을 평가 절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시 각설, 그리고 류승완 감독에 폭력이나 액션이 화두였다면, 김유민 감독에게는 멜로가 바로 그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류에 대한 반항 내지는 체제 저항이 이 영화에 흐르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노랑머리 2> 잘 짜여진 멜로 영화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유민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아주 재미있게 상황들을 설정했다. 전반부에 3개의 에피소드들을 서로 철저히 맞물려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맞물림은 관객에게 재미로 전달된다. 앞에서 나온 주변 인물들이 후반에는 주동인물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 구성이다. 진부할 수 있는 설정이기도 하나 잘 짜여진 덕에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결국 노랑머리는 수작과 졸작의 경계를 묘하게 넘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간의 평이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을 볼만하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멜로가 있고, 약간의 눈물도 있고,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사족을 붙이면, 이 영화에서는 가장 괜찮은 서비스 장면 두 가지!
첫째, 백양 비디오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한 장면 Y와 메니저의 정사씬!
둘째, 하리수의 작은 유두가 나오는 정사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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