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Alternative for Women
글: 김윤경
2003년 0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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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그랬듯이 <질투는 나의 힘>도 급진적인 시각을 통해 타협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과 그에 따른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데 여전히 유효한 ‘그것’은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을 향한 대안제시. 그것은 성 모랄을 어디까지 적용시켜야 할 것인가부터 시작하여 결혼제도의 한계라는 묵직한 사안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철저히 개인으로 몰입하여 ‘고뇌’나 ‘갈등’의 흔적을 남용하지 않는다. 캐릭터의 문제만 놓고 본다면 <질투는 나의 힘>은 제법, 아니 꽤나 쿨한 영화다. 감독이 도덕적 잣대를 의식한 대목이 있다면 배종옥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인물로 상정해놓고 그것이 메마르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그녀가 “내게는 집이 없다”며 정신적 대가를 치르는 것과 문성근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걸”이라며 장인의 죽음 앞에 죄책감을 떨구는 것은 수위 면에서 불평등한 것이다. 당위성이 결부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소 의식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배종옥의 캐릭터를 응집시켜놓고 분석해봤을 때 그녀의 공허감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그녀가 박해일을 차치하고 문성근을 택한 데에는 ‘가볍게’ 세상을 응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은 <질투는 나의 힘>이다. 제목만으로 영화의 맥을 짚는다면 박해일의 시선이 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순응적이며 박력 없는 박해일은 변방의 인물로 배종옥과 문성근을 해석하는 핵심 키워드로 작용한다. 보다 파워 있는 캐릭터를 위한 서포터인 셈이다. 뚜렷한 개성을 소유하고 있는 두 인물에 짓눌린 박해일은 세상에서 가장 폭력성 없는 질투를 보여주고 있다. 질투의 개념을 새롭게 창조해낸 것이다. 이렇듯 ‘질투’는 박해일의 것이 아니라 영악남 문성근과 경제력 갖춘 쿨녀 배종옥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만남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이해 불가능하지는 않다. 무모할 정도로 오랜기간 파워게임의 두 축이었던 여성과 남성이, 이제는 성별을 떠나 개체끼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성관객들은 배종옥에 자신을 대입시켰으며, 문성근을 향해 예전과 같은 야유를 퍼붓지 않았다. 그리고 박해일의 순진함에 귀여움을 느꼈다. 현실로 돌아와 이들의 관계를 바라봤을 때 누가, 그 감상에만 머물 수 있겠느냐하는 물음에는 할말이 없다. 누구나 보편적 가치체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 거래방식에는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비난에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관습에 갇힌 성 모랄로 인해 여성들이 짐 지워야 했던 무게들이 봇물 터지듯 ‘나, 여기 있어’라는 시위를 잠시 <질투는 나의 힘>에서 엿본 것일지도 모른다. 생존생계라는 형이하학적 문제도, 사랑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도 영원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에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질투는 나의 힘>은 여성들에게 성 담론의 주제를 넌지시 던져놓고 간다. 그것이 한시적이며 탁상공론식 왁자지껄 수다로 그치는 것이 결론이 될지라도 이 불온하고 발칙한 영화는 이상한 평온함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박해일이라는 청순가련 ‘꽃잎’형 남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절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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