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너희가 진정 쿨하게 사느냐?
글: 김윤경
2003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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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관적으로 (어쩌면 희망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쿨'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률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인간이 양심적이라서 쿨할 수 없다기보다 지극히 이기적이며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때문에 이 영화는 일처일부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대안의 모순도 함께 고스란히 들추어내고 있다. 쿨하게 바람 펴봤자, 결론은 쿨하게 헤어지는 것일 뿐이다. 지지부진하게 매달리며 자존심을 내팽겨치는 여느 커플과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것. 영화 속 인물들은 소설 속 클로이처럼 모순된 감정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공중곡예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차이점은 있다. 사실, 쿨한 척 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들의 쿨한 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중산층의 위력이자 위선일지도 모른다. 덧붙혀 이에 변화하고 있는 여성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정과 연은 사회경제적으로 독립된 여성을 대변하고 있으며, 영작은 이 같은 대세에 호응관계가 성립되는 캐릭터이다. 그들의 당당함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담보로 가능하다. 그리고 진정성에 '냉소'로 맞대응하며 관용의 정신을 키워낸 자혜로운 자들이다. 이들은 눈감아주는 대신 믿지 않는 것을 택한다. 이렇듯 <바람난 가족>은 해체된 중산층 가족의 당찬 어조로 '쿨하게 사는 법'을 제시하며 심지어 코미디 요소를 불어넣기에 이른다. 피를 뿜어대는 영작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윤여정의 “독특해, 독특해” 한 마디가 이 영화 속에서 구현해내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그놈의 진정성에서 자유로울까. 성악설을 인정했다 치고 우린 똑똑해서 인간의 욕망을, 그 한계를 너무도 잘 알아, 고개를 백번 끄덕였다 치자. 우리 모두 땀 흘려 사회경제적 자본을 획득합시다. 그리하여 나도 한 번 쿨하게 살아보는 거야? 이렇게 결론을 내고, (영화 속 대사처럼 내 맘이 원하는 대로,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솔직하게 살면서도 상처 없는 삶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세속적인 질주를 택하든지, 아니면 이 땅의 사회 불평등을 작살내기 위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마르크스의 부활을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대안도 찾지 못했다.
윤여정의 새 인생 출발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담보로 가능해지고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녀가 쿨해지는 데에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정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섹스신은 아들의 죽음으로 야해질 수 없다. 영작은 그 스스로 쿨하게 산 댓가로 상실의 삶을 계승받고야 만다. 결국 <바람난 가족>에서의 모든 구도는 제 죄 값 제가 치르는 것으로 귀결되고야 만다. 여기서 '죄'는 관용적 표현일 뿐 '몫'이라는 차원에서 쓰여진 것이다.
나는 결코 이 영화가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슬로건에 영합할 수 있는 '레퀴엠' 같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이 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는 솔직해지고 싶지만, 특정 대상이 나처럼 솔직해지기를 바라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칸트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가 떠올랐다는 것. 이 고집스런 문구에서 해방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인간은 정직하지 못하지만 인생은 정직하다는, 아주 끔찍하고 두려운 사실을 깨닫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씨네 21]의 임상수 감독, 조선희님, 최보은님의 3각 혈투를 읽고 나는 <바람난 가족>의 페미니즘적 비판에 '어떤 페미니스트'들의 한계를 느낀다. 멋진 여자가 나오면 환타지고, 불쌍한 여자가 나오면 폄하가 된다는 식의 제 살깎기 논쟁들이 더 이상 영화 한 편 보기에 불편한 담론이 되지 않는 세상이 조금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무'에 연연해 '숲'을 보지 못하는 맹렬한 시선들이 이제는 부담스럽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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