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 뉴욕, 섹스 그리고 네 명의 독신녀
글: 김윤경
2003년 10월 14일
사춘기 소녀도 아니건만, 위안받을 곳은 고작 일기장밖에 없는 비루한 신세랍니다. 그런데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 있더란 말입니다. ‘요즘 내 삶의 유일한 낙은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정을 눈치 채셨겠죠. 그러나, 딱한 처지를 한탄해볼 심으로 영화도 아닌 미국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소재 삼으려는 것은 아니랍니다. 아무리 굶주려도 가려먹자, 가려보자(!)가 제 신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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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는 참말로 재밌습니다. 웃을 각오, 놀랄 각오하고 네모상자 앞에 앉는 거죠. 네 명의 캐릭터들이 치고 빠지는 대사는 아멜리 노통의 발칙한 문장 만큼이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구요. 이는 캐릭터를 ‘실존인물’인양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아무래도 가장 사적인 부분을 소재로 다루니까요)됐기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완벽하지 않은 실수연발의 인물들. 매력이란 완벽함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글쎄, 뉴욕 최고의 엘리트라는 수식어가 한몫 거드는 것일까요. 거기까지는 생각지 않을래요. 그럼 복잡해지거든요.
여하튼, 미란다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변호사지만 전 남자친구를 보고 부리나케 도망을 치죠. 미남형사 앞에서 넋을 잃고 술기운을 빌려 안겨버리지만 다음날 ‘알콜중독자 치료모임’ 전화번호를 받고야 맙니다. 여기선 웃는 거죠. 캐리는 칼럼리스트로서 이름 값하는 문화엘리트지만 감정조절에 번번이 실패하지요. 유부남 빅과 관계를 맺고, 애인에게 상처주면서 서른넷의 이 노처녀는 성숙해지죠. 캐리는 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빨간 벽 같아.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은 없는” 여기선 움찔 놀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내면갈등’이 전무해 보이는 사만다는 금세기 최고의 쉼 없는 성욕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뉴욕 사교계에서 매장을 당하자 기부재단건립의 인부가 되어 한줄기 참회의 빛을 보지요. 아, 그리고 샬롯. 게중 얌전하고 보수적인 샬롯은 결혼을 통한 행복을 꿈꿉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아, 인생의 아이러니여.
이렇듯 미란다, 사만다, 캐리, 샬롯은 ‘모두 매력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각기 전형을 만들어나가고 있죠. 가령 제 친구를 소개할 때 이러는 거지요. “얘가 바로 그 때 말한 사만다야.” 라든가 “넌 캐리랑 미란다랑 반반씩 섞어놓은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창조된 인물에 불과하지요. 더욱이 뉴욕, 엘리트, 문화적 취향 등을 철저하게 ‘옹호’하는 데에도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게는 뉴욕의 독신녀를 미화하는 듯해보이지만, 가만 보면 미국의 자본주의를 교묘하게 방어하고, 예찬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과장의 미학, 혹은 어떤 술수를 통해 한국의 도시와 연애담에서도 미국의 <섹스 앤 더 시티>는 터를 잡은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낙’을 찾을테니까요.
참고로 <섹스 앤 더 시티>의 거친 입담. 서른넷의 독신녀들에게서 오가는 음담패설에 대해서 말인데요. 전체 대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탓에 남자들이 이렇게 물어본대요. “여자들이 정말로 저런 얘기를 한단 말이야?”라고요. 글쎄요. 성차보다야 개인차를 따져야 옳은 시대입니다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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