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잔인은 무슨, 하염없이 섹시한 영화
글: 김윤경
2003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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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 이후로 그의 영화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얼굴 반열에 올랐다.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워 치하?했지만,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올드보이>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장기를 소금에 찍어먹고, 사람을 자르는 톱,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 상관관계 없는 살인과 복수, 그리고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베리베드씽식 전개.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살벌한 비주얼도 두려웠고, 분명한 현실인 부조리를 보는 것도 두려웠다. 이쯤 되면 박찬욱은 성공한 거다. 적어도 난 그의 영화와 애증이라는 무시무시한 인연으로 엮어져 있고, 분명 그것은 '사랑'이니까.
우선, <올드보이>는 잔인하지 않았다. 눈을 감을 필요가 없었다. 지레 겁을 먹고 얼굴을 가렸지만 '오바'임이 판명 났다. 좀 민망해하는 걸로 상황종료. 만화적 상상력은 이따금씩 웃음을 자아냈으며 그 여운은 이다지도 질기어 간혹 여기 저기서 웃어댄다. 오대수의 특별한 '경험'이 최민식에게 착착 휘감기는 동안 '낯섬'은 유머와 위트, 풍자와 해학, 은유와 상징으로 황홀한 국어 수업시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추측해보건대 문자 깨나 접하신 먹물님들꼐서 매트리스식으로다 <올드보이>를 논하신다면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나오리라 싶다. 그렇다. <올드보이>는 무지 똑똑한 영화다. 리얼리티 운운하는 건 진짜 '오바'고, 분위기 어림잡아 틀 지운 얼개 내에서도 개연성은 너무도 빈곤하다.
그래도, 여전 <올드보이>는 똑똑하다. 돌멩이든 모래든 가라앉긴 마찬가지이듯 박찬욱의 '놀랬지?'에 넘어가고 폼나게 제 할말 했으니까. 나처럼 눈치 없고 순진한 관객에게 <올드보이>만큼 황홀한 어드벤처는 없을 것이다. 유지태와 최민식은 선후배 관계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영화 속 이우진과 오대수에게도 적용시켰다. 이러한 '선입견'에 의해 닫혀있던 대중의 감각을 박찬욱은 그대로 '이용'했다, 그리고 멋지게 '반격'했다. 박찬욱이 '반전'으로 내놓은 키는 사실상 반전이라기보다 뼛속까지 침투해버려 털어낼 수 없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멋스럽게 논 것이다.
<올드보이>는 섹시한 영화다. 영화를 구성하는 입자 하나하나가 모두 '섹스어필' 로 뭉쳐있다. 요렇게 뭉쳐놓으니 괴물같은 묘한 세계를 창조해냈다.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미학적 오브제'로 탄생하고, 어떤 것에도 시선을 겨냥하기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유는 섹슈얼한 감각 때문이다. 내놓고 쳐다보기가 민망하여 자꾸만 모른 체 하지만 결국엔 쏘아볼 수밖에 없는. 흡사 전인권을 연상시키는 산발한 머리카락을 보다 웃다, 묘한 이끌림으로 유혹 당하고 만다. 나는 여러 번 유혹을 경험했고, 몸이 풀리는 듯한 야릇한 경험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릇된 형식의 유혹이 얼마나 얄궂도록 강렬한지 느끼다, 이것이 금기를 향한 욕망과 비슷한 것 아닌가. 일단락 짓는다. 물론 심기는 어지럽다. 그래도 섹시하다고 느낀다. 단선적으로 영화를 느끼고, 그 느낌을 잘라 말해달라면 내 대답은 이럴 수밖에 없다. 아, 섹시해.
모르고 본 죄로 <올드보이>는 그렇게 내게 밀착을 시도한다. 어느 순간 '잔인'과 '철학'은 무장을 해제하고 무턱대고 섹시한 감각으로 달겨든다. 역시, 내가 두려워했던 '폭로'는 <도그빌>, <섬>, <죽어도 좋아>를 뛰어넘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우리는 알고도 사랑했는데, 너는 알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알면서도 너, 피해갈 수 있겠냐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금기이며, 건너서는 아니 될 강이라 긍정하고 있어 너무도 잘 알지만 그것이 되려 우리를 그 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냐고.
<올드보이>는 잠자고 있던 기억과 욕망을 되살려내 뒷맛을 깔깔하게 만든다. 어떤 이의 혀를 잠그게 만든다. 여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어쩌면 <올드보이>는 건너서는 아니 될 수많은 강들을 '상상'을 통해 수십 번 오가게 만들지도 모른다. 실현 가능성은 있다? 없다?. 글쎄. 우리에게 그토록 영험한 최면술사가 있다면야. 뭔들 꿈꾸지 않겠는가. 뭔들 면죄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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