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필연적 사회악
글: 김윤경
2003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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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삼인조>를 통해 B급 정서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외면당했지만 나는 <삼인조>를 좋아한다. 고작 열살 남짓한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피는 장면은 지독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흑백단편영화 <심판>또한 각별하다. 이후 박찬욱은 웰메이드무비의 전형 <공동경비구역 JSA>로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지만 그것은 명필름의 영화라는 함의가 농후하다. 여기서 멈춰 설 것인가. 배신감과 기대감이 묘하게 뒤엉켜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고 끝내는 마주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의 자기 세계와 작가주의 정신에 기대여 있으면서도 현실반영의 기능이라는 잣대 그 모두에게 중첩되는 매우 '영악한' 영화다.
계급의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복수는 나의 것>은 영미, 류, 동진을 내세워 '착한 사람입니다'를 강조하며 '그래도 복수합니다'의 기나긴 당위로의 여정, 그리고 모두가 죽어버리는 고약한 결론을 내놓는다. 본디 착한 사람들이지만, 복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 댓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비극적 기승전결은 그가 이름 붙힌 '정통 하드보일드'답게 건조함이 가진 냉냉한 무게를 인정하게 만든다. 정교하게 잘 짜여진 대비적 효과는 류의 누나의 신음소리가 소위 '딸딸이'로 변주되는 과정속에 드러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포석은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를 비판하고 있다. 도처에 깔린 비현실적 이미지는 자칫 리얼리즘과 충돌할 수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판타지의 세계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 캐릭터에는 강렬한 메타포로 점철되어 있다. 무섭도록 치열한 한 개인에 대한 노골적 접근은 호러영화 이상의 공포와 경계심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직선적 '선언'과도 일면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캐릭터를 위시한, 혹은 의존한 영화적 구성이라기보다는 현실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박찬욱의 깡다구 '센' 표현방법이라 보여진다. 오시마 나기사보다 잔혹하고 세련된, 켄 로치보다 덜 감정적인 그래서 불쾌한.
여기서 가장 특색있는 인물은 영미다. 계층과 계급으로 설명되기 보다 '인텔리'라 불리우는 지식인이라는 공통분모로 뭉친 사람들. 이들은 자본주의로의 진입이 일정부분 가능하지만,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체제를 타파하려는 급진적 운동을 펼친다. <복수는 나의 것>은 영미에게 무게중심을 실어 다소 낭만파적인 좌익세력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존재의 유무도 확신하지 못했고, 쿡쿡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던 영미의 '사상'이 이른바 사실(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 동맹)로 드러나는 라스트 신은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 인간을 잔인무도하게 복수할 수 있을 지언정 체제를 바꿀 힘을 감지할 수는 없다. 거기까지가 현실이다. 복수는 대립구도 내에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동진과 그의 딸에게 가해진다. 거기까지가 현실이다. 때문에 <복수는 나의 것>은 철저히 '현실'을 반영한다. 그것을 강조하려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리얼리티 영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복수'는 필연적 사회악이다. 인간은 '선'도 '악'도 택할 수 있다. 그 양자간에 휩쌓인 인간의 선택은 개인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에 의한 비자발적 의지이다.
어떤 사건을 보며 한 편의 영화가 튕겨 날라든다는 것은 기분좋은 경험이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을 마주하는 것은 다른 범주에 속한다.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수해자가 나올 것이며 정부는 재해복구대책을 세울 것이다. TV 화면 왼편은 ARS 성금모으기가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며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복수할 수 있다는 것을 픽션의 관점에서 간과하지 않고 부르르 떨 것을. 기다란 대교 조심. 백화점 조심, 지하철 택시 조심. 이사람 저사람 조심조심. 그런데 이걸 어쩐다. 불똥이 제대로 튀지 못하고 '운' 나쁘면 복수 당하니. 그것도 쉽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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