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이 슈운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10대는 아름답지 않다
김윤경 | 2002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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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클락의 <키즈>를 ‘고의적’으로 대낮에 보았더랬습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환경적 장치를 통한 거리두기도 별 소용이 없더군요. 클로비 세비에의 발걸음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는 내내 두려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래리 클락의 <키즈>는 개봉 당시 미국에서도 진통을 앓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키즈>의 10대가 미국 청소년을 대변하는 보편적 코드는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약물오남용과 성적방종으로 무장한 행위들을 10대의 위치에서 내다보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발산이 아니라, 자기반성 없이 당당하게 저질러진 파행들을 말이죠. 돌이켜보건대 모든 성장영화는 지난한 생의 속성을 과감하게 보여주곤 합니다. <푸줏간 소년>의 거침없는 위악성은 기성세대의 위선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며 자학적인 형태이며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은 유년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하려는 지금의 기억을 ‘모두 착각’이라고 매몰차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걸파이트> 역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제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있구요.
위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와이 슈운지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감각을 발휘하며 10대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드넓은 푸른 초장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한 소년이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니 그것은 일종의 매몰이죠. 릴리 슈슈라는 ‘music star’입니다. 오프닝 신은 이렇듯 화사한 기운으로 관객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비적 효과를 위한 다소 엉뚱한 서막에 불과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끝내 정체를 현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릴리 슈슈는 비정상적인 흡입력을 가진 우상으로서 등장합니다. 절대적 동경에 사로잡힌 10대들의 열성이 기성세대에게는 환타지로 치부되겠지만, 그들에게는 일상보다 좀더 현실감 있는 세계일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또래와의 우정, 순수한 이성관 등으로 섣불리 규정지을 수 있는 10대는 사실상 위의 사항들이 온전히 지켜지지(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않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파행적으로 표출되고는 합니다.
래리 클락의 <키즈>가 특수한 10대들이라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굴절되어버린 10대의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굴절의 성격과 강도에서 비롯되는데 ‘요즘 얘들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무섭다’라고 말하는 영화 속 기성세대의 두려움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하한선과 상한선을 가늠할 수 없는 선악의 판단은 자신의 친구를 이지메하기 위해 집단윤간을 저지르는 파행으로 치닫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저리도 악할까. 참으로 고약한 놈들이네, 라고 혀를 끌끌 찰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당신들의 10대는 얼마나 유순했을까요? 미시적 세계관이 전부였던 좁다란 인식 속에서 부대껴야 했을 마찰과 충돌. 그것을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견뎌냈을까요? 성(性), 가족, 친구, 권력, 계층 이 모든 거대한 사안들이 분명 10대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형태는 좀 더 극단적이고 첨예하게 우리를 자극했을 겁니다. 적어도 나는 원조교제를 하지 않았고, 친구를 따돌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얘들은 무서워.라고 딴 척 할 수도 있구요. 그러나 우리도 한때 겁나게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었을까요. 동시에 집중하고 있었던 무엇이 있었을 겁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릴리 슈슈는 이들에게 돌파구이자, 안식처이자, 도피처 즉 그들의 ‘모든 것’이죠. 그러나 치유책이 되거나 심지어 미봉책도 되지 못합니다. 그저 그들이 가아야 할 곳은 10대를 넘어서는 것뿐입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적당껏 분노를 추스릴 줄 아는, 더 적확하게 지적한다면 잃을 것과 얻을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어른의 세계로 말이죠. 사실상 방법이 없는 거네요.
자살을 대안으로 삼고 평온함을 얻고 있는 20대 후반의 ‘영화 읽어주는 여자’지만 10대로 되돌아가라 하면 NO,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0대는 내가 살고 있는, 살아가야 날들의 명백한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여보세요. 교복 입은 소녀들과 하룻밤 자고 나면 순수해질 거라 믿습니까?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교복으로 표징되는 10대는 결코 녹록치 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Pz. 함부로 건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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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경
하얀 언덕에, 빨간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난답니다.
영화제라도 있음 소식 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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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