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취향에 살고 취향에 죽다

영화 읽어주는 여자

<타인의 취향> 취향에 살고 취향에 죽다 :::

김윤경 | 200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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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여담으로 시작하도록 하죠. 제 측근은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 CDP에서 흘러나오는 메탈리카의 쩌렁쩌렁한 사운드를 듣고는 바로 귀가를 조치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뭐. 메탈리카를 듣는다고 딱지를 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네. 그럴 수도 있답니다. 취향의 불일치는 종종 관계의 종막으로 치닫고, 반대의 경우에는 서막을 예고하기도 하지요. 관계의 유지나 해피앤딩에 상관없이 어쨌거나 취향은 그 시작에 있어서만큼은 관건인 것은 확실한 듯 싶어요.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뉴욕커들의 삶을 요리조리 수다하게 늘어놓으며 그들만의 정서를 사적으로 취합니다. <애니홀>이나 <맨하탄> 같은 경우는 뉴욕커 그대로를 옮겨 스케치했죠. 영화 속에는 다양한 문화엘리트들이 자신들의 기호를 포섭하고 논쟁하기에 바쁘답니다. 연극적 구성을 취한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집에 불이 나면 무엇을 들고 나오겠느냐?”라는 대목은 그들만의 명백한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명화’의 이름을 대며 환호를 내지르더군요. 기억하건대 이 신은 월드컵 때 국민들이 보여준 연대감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보여주는 지적인 로맨스 <비포 선라이즈> 역시 상대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으로 소위 필이 꽃힙니다. 제가 보건대 두 남녀는 성격 자체는 상반적이지만 마인드 측면에서는 상당히 상통하고 있지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롭(존 쿠삭)은 카메오로 등장한 쌔끈녀 캐서린 제타 존스을 꼬시는데 성공합니다. 그 묘책이 무엇이냐고요? 문단 내에서 유추를 하시고, 모르시겠으면 영화를 보시와요.

<타인의 취향>은 문화적 소양의 유무를 통해 취향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섭니다. 취향으로 호감과 경멸의 경계를 구분 짓는 주인공 클라라와 그를 사모하는 카스텔라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타인의 취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취향에 죽고 사는 부류가 분명 존재한다면 개의치 않는 부류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취향이란 누구에게나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해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문화적 성격을 띈 취향의 문제는 다소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홍상수 매니아와 허진호 매니아 사이에는 우열의 개념보다는 정서적 측면에서의 분열이 일어나지만 <엽기적인 그녀>와 <생활의 발견>의 웃음의 페이소스는 사실, 우열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단지 ‘취향’ 한 가지 주제로 방대한 이론을 구축했습니다. [구별짓기]라는 저서인데 부제는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이죠. 여하튼 부르디외는 요놈의 취향 한 가지 사안으로 사회를 진단하고, 고찰하고, 밝혀내려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화자본은 계급을 결정한다. 그리고 문화자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취향’이라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컬트 매니아를 양산시킨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한 기자는 전경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데카당스니, 뭐니 하는 말들을 복수가 이해할 것 같니? 그래서 너희들은 안 돼”라고. 그러나 전경과 복수는 사랑을 나누죠. 키보드리스트와 소매치기의 사랑은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를 정면으로 격파합니다. 그들의 사랑이 환타지가 아니라면 영혼과 영혼이 만난 보기 드문 커플이며, 취향이 관계에 있어 전부는 아니겠지요. 덧붙혀 초강력 우정의 화신! 앤셜리와 다이애나도 취향에 있어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정도에 있어 가치부여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한 클럽 D.J가 한 말에서 그 핵심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매니아이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매니아인 것은 싫다. 매니아의 정서를 아니까. 그러나 내 여자친구는 반,드,시 비틀즈를 좋아해야만 한다”